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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피리 불며 넘던(보릿고개)문근식 시인.전 음성군청환경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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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05  11: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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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텅 비었다. 이 큰 도시를 나 홀로 지키고 있는 건지 겹겹이 에워싼 고독이 목까지 차올랐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한동안 잊었던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칠팔십 년대의 팝을 듣는다. 휴일 오후의 고독은 늘 그리움을 동반한다.

하릴없이 집안을 이리저리 뒹굴다가 무심코 커튼을 걷었다. 한꺼번에 시신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 그 미세한 입자들이 온몸에 퍼진다. 문득 작년 겨울에 보아둔 보리밭이 생각났다. 서둘러 카메라를 챙겨 현관문을 나섰다. 또 그리움 쪽으로 역마살이 뻗친 게다.

한 시간을 넘게 달려서 보리밭에 도착했다. 이삭이 노릇노릇 익어가기 시작했다. 셔터를 막 눌러댔다. 카메라에는 풍경이 하나 둘 추억으로 저장되고 그리움은 새록새록 가슴에서 현상 되고 있었다.

해마다 보릿고개를 넘으면서도 그것이 보릿고개인 줄 모르던 시절이 있었다. 어머니의 한숨이 유난히도 길었던, 들숨 날숨에도 늘 한숨이 섞여 있던 어머니의 저녁처럼 아직 여물지 않은 보리 이삭들이 흔들리며 내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속에 그 긴 보릿고개를 넘던 어머니의 발소리가 숨어 있는 것은 내 기억에 잊히지 않는 가난한 날의 그리움이 남아있는 탓일게다.

보리를 꺾어 피리를 만들었다. 있는 힘껏 불어보았지만, 소리가 나지 않는다. 어머니의 보릿고개만큼이나 길었던 피리 소리는 어디쯤에서 멈추었을까.

불다가 불다가 지쳐 쓰러져 잠이 든 밤 꿈결에 들리던 피리 소리. 이제 빛바랜 흑백사진 속의 희미한 기억처럼 몇 평 안 되는 보리밭이 애처롭다.

문득 양대를 숭숭 집어넣고 넓적하게 만들어 한 끼 배를 채우던 보리개떡을 먹고 싶다.

한 여름 샘에서 갓 길어 온 물에 말아 먹던 보리밥. 그리고 상추에 된장을 듬뿍 발라 한입 가득 쌈을 싸 먹던 그 보리밥 맛이 그리워진다.

밤이 깊어가도록 반딧불이처럼 온 동네를 떠돌아다니던 보리피리 소리.......

그 소리가 여름 낮 잠과 잠 사이를 배회 한다.

보릿고개가 그리운 이유는 무엇일까?

슬픔이든 기쁨이든 추억은 그리워서 좋다. 아픔도 고통도 지나고 나면 다 그리워지는 거다. 보릿고개를 오르시던 어머니의 발걸음이 보리피리 소리보다 가벼운 것도 다 그리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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