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순 수필가

 
 

새 한 마리가 거친 바다를 날고 있다. 언뜻 보면 겨울의 눈 내린 밭인 듯도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바다가 분명하다. 하늘엔 별이 총총히 떠 빛난다. 밝은 것도 아니고 어두운 것도 아닌 적당한 빛의 세기다.

어디서 바람이 불기라도 하는 것인가. 망망대해 위로 파도가 일으키는 포말이 가득하다. 그렇다고 파도가 높이 치는 것도 아닌데 온 바다는 거칠게 울고 있다. 그리고 그 위로 커다란 새 한 마리가 소연히 날아간다.

그저 허리가 아프신 줄만 알았다. 일주일을 병원에 계시던 어머님이 구토를 하셨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까탈스런 어머님의 성격에 병원 밥이 싫어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님 스스로도 병원 밥이 싫다는 말씀을 누누이 하신 것도 일조를 한 것이리라.

처음 입원하셨을 때만 해도 병원에서는 어머님의 허리에 이상이 있다고 진단을 내렸었다. 그런데 집 밥이 드시고 싶다는 어머님이 퇴원을 하시고도 차도가 없자 다시 세밀한 검사가 이뤄졌고 그제야 불치병이라는 것을 알았다. 손도 쓸 수 없이 하루가 다르게 어머님의 상태가 내리막길로 치달았다.

덩그러니 어머님이 누워 계신 침대 밖에 없는 휑한 병실이다. 아마도 임종을 맞이하는 분과 그 가족을 위해 마련된 방인 모양이다. 병실엔 어머님과 나 둘 뿐이다. 아무런 기척도 없는 어머님의 손을 만져 보았다. 어머님의 손을 이렇게 자세히 관찰하는 것도 처음이다. 이상하게 나는 어머님이 어려웠다.

스물 셋, 내가 시집을 온 나이다. 마흔 일곱, 어머님이 나를 며느리로 맞은 나이다. 나도 그렇지만 어머님도 며느리를 보기에는 서툰 나이였을 테다.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던 이유 중에 어머님의 역할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어머님은 여간 부지런한 분이 아니셨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밭일을 하시고 해가 지고 컴컴해서야 집으로 돌아 오셨다.

그런데도 집안은 언제나 깔끔하게 청소를 하셔서 티끌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다. 그러니 어머니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반면 나는 살림에는 젬병이라 어머님의 눈에 찰 리가 없었다. 아이 셋을 키우랴 살갑지 않은 남편 비위 맞추랴 하루하루가 나에게는 낭떠러지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새끼손가락은 밖으로 휘어지고 부드러워야 할 엄지는 딱딱한 굳은살이 옹이가 되어 있다. 얼마나 일을 하셨으면 손이 이렇게 될 수 있을까. 군대 간 남편을 대신해 혼자 아이를 키우고 농사일을 하셨으니 얼마나 외롭고 힘드셨을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머님의 옹이가 박힌 손을 잡고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나는 몸을 숙여 어머님의 귀에 속삭였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고, 고마웠다고 그리고 어머님을 이해 못해 죄송했다고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답답했던 마음이 순간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내 느낌이었을까. 어머님의 모습이 편안해 보인 것이.

기분 탓일까. 그림속의 새는 날개가 훨씬 커 보였다. 이제는 진짜 안녕이라고 인사를 하는 듯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있다. 처음 이 병실에 들어 올 때만 해도 물에 닿을 듯 아슬아슬해 보이던 새였다. 하지만 이제는 온 몸이 구름으로 가득 차 정말 가벼워 진 듯 미련 없이 날아가고 있다. 구름새, 마치 나는 어머님이 새가 되어 훨훨 날아가시는 것만 같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장마가 끝나기를 기다리셨다는 듯 어머님은 먼 길을 떠나셨다. 화장터에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본 하늘은 왜 그리 맑던지 야속하기만 했다.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닦으며 올려다 본 그때였다. 먼 데 하늘에서 새 한마리가 힘차게 구름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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