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준 식 전 음성교육지원청 행정과장

 
 

나는 종손은 아니지만 장남이다. 집안어른들이 일찍 돌아가시고, 증조할아버지 이래로 큰집사촌 형제도 있지만 나이는 내가 제일 많아 친척들의 대소사나 큰 행사에도 내가 관여하고 결정해야 하는 일이 있다. 객지생활을 하는 바쁜 동생들을 대신해서 조상을 모시고 받드는 일이나 행사에도 주도적으로 나서서 깊이 관여를 해야 한다. 본의 아니게 신경써야하는 일이 생기고 마음조이고 생각해야하는 일도 생긴다. 가끔 종종문제나 집안의 일로 인하여 의견차이가 생기고 틈이 갈대도 있다. 집안 식구로부터의 불만도 참아 내면서 내가 나이가 더 먹었다는 이유로, 고향을 지키고 있다는 이유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불편한 면도 있다고 느낀다.

전통사회에서 장남의 주요임무는 부모를 잘 모시고 제사를 잘 받드는 것이었다. 장남은 집안의 중심축이었으며, 부모의 재산을 상속하는 권한도 모두 장남에게 있었다. 장남은 지차인 삼촌보다 우위에 자리한다. 제사를 지낼 때도 작은아버지보다 장남이 먼저 절하고 제례를 주도하였다. 집안에 손님이 올 때에도 손님을 맞이하고 접대하는 것은 역시 장남의 중요한 임무였다. 옛날에는 ‘봉제사 접빈객’이라고 하여 제사를 잘 모시고 손님을 잘 접대하는 것이 양반가 장남의 중요한 일과였다. 이름 있는 가문의 장손은 부모님이 연세가 높아 거동이 불편하면 객지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와 종가를 지키며 장남으로서 역할을 한다고 들었다.

민법의 변천에서 보듯이 가족의 구성이 제정당시의 혈통중심의 가족제도에서 호주제가 폐지되고 부부중심의 가족제도로 변경됨에 따라, 상속재산도 장남인 호주 상속인에게 더 주던 것을 배우자를 제외하고 형제자매간 동일하게 상속하도록 했다. 부모를 모시는 것도 장남이 아닌 생활형편에 따라 가까이 사는 자식이 모시거나, 이웃에 살더라도 서로의 편리한 생활을 위하여 부모와 따로 사는 것이 요즘의 대세이다. 자식들이 모두 대처로 나가고 부부만 사는 사람들이 많고, 부부 중 한사람이 죽더라도 도시로 가지 않고 마음편한 살던 곳에서 이웃들과 어울려 살기를 원한다.

아직도 시골에 가면 씨족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마을이 남아 있다. 물론 다른 성씨를 가진 사람들도 어울려 살아가지만 특정한 성씨들이 대성을 이루고 사는 알려진 마을이 많이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보면 과거처럼 집안사람들이 모여서 제례를 지내고, 마을 느티나무아래 솥을 걸고 국밥을 해먹으며 벌초를 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생활에 바쁜 사람들도 있어서 지만, 씨족에 대한 애착심이나 의지하는 마음이 많이 퇴색한 탓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시대는 아들이나 딸 하나만 낳아 기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형제 자매도 점점 줄어들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촌, 고모, 이모와 같은 친척들은 자연스럽게 없어지게 되어있다. 우리가 생각했던 대가족의 개념에서 점점 멀어지는 시대가 되었다. 친가를 중심으로 뭉치던 친척의 개념은 이제는 처갓집 중심으로 뭉치는 시대로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이제는 장남이니 차남이니 하고 서열을 정하고 대소사를 결정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어른을 모시고 산소를 돌보고 조상을 숭배하는 것은 구시대라고 생각한다. 부모님을 대신해 장남의 역할을 해야 하던 세대의 한사람으로서, 어려웠던 기억보다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아름다운 미풍양속이 밀려오는 세대의 변화와 급속한 발전으로 변화하는 것이 못내 아쉽고 가슴한곳이 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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