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자 수필가

 
 

산속의 계절은 바쁘게 흐른다. 볕이 잘 드는 곳 대왕참나무는 유난히 곱게 물들었다. 볕이 적은 느티나무는 벌서 나목이 되었다. 낙엽은 바람 길을 따라 수북이 쌓여 가을 운치를 더한다. 그곳을 지날 때 낙엽 구르는 소리, 낙엽 밟는 소리가 바스락거린다. 단풍길 팻말이 놓인 골짜기로 들어섰다. 온산을 붉게 물들인 단풍이 장관이다. 나뭇잎은 저마다 본연의 색을 뿜어내며 마지막을 불사르고 있다. 나무는 겨울눈을 준비하고 나뭇잎과 이별 준비를 하는 것이다. 바쁘게 떠나는 가을을 놓칠세라 손을 잡고 이곳을 찾아온 가족, 연인, 친구들이 오솔길로 접어든다. 그들의 모습도 단풍처럼 곱다.

백야자연휴양림 이곳을 찾는 이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휴식처를 만들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구슬땀을 흘리며 구석구석 쓸고 닦는다.

멋지게 조성한 수목원 경관도 휴식처다. 올해는 유난히 긴 장마와 태풍이 지날 때마다 길은 곳곳이 패이고 무너졌다. 이곳을 책임진 이들은 돌을 쌓고 흙을 메우는 힘겨운 작업이 연일 계속되었다. 쓰러진 나무를 정리하고 사람과 동물의 경계를 위해 길섶의 풀을 제거한다. 뱀의 출몰을 막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쾌적한 환경을 즐길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의 수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 1단계로 완화되자 그동안 집안에서 답답한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휴양림을 찾아왔다. 숙소는 빈 곳이 없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새들의 지저귐만큼 울려 퍼진다. 방을 두고 평상에 텐트를 친 가족들도 여럿이다. 관내 어린이집에서 하루 두 팀씩 숲 체험을 오고 있다. 그로 인해 내 발걸음도 바쁘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숲의 모습에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인다.

이곳에는 단풍처럼 고운 분들이 있다. 성격이 활발하고 음식 솜씨 좋은 주석 언니는 점심을 도깨비방망이 두드리듯 뚝딱하면 해놓는다. 마음도 백합나무 잎사귀처럼 부드럽고 넉넉하다. 한솥밥 먹는 식구 15명이 따끈한 밥 한 그릇에 지쳤던 몸이 힘을 되찾는다.

커피 맛이 일품인 최고의 바리스타도 있다. 구불구불 오르막길을 자전거로 출근한다. 언제나 40분 일찍 도착한다. 아저씨는 출근길이 힘들어 지칠 법도 한데, 한 번도 마루는 법이 없다. 서둘러 물을 올리고 커피콩을 간다. 커피 통에 종이 필터를 깔고 분쇄된 원두를 넣는다. 물이 한쪽으로 쏠려 물길이 생기지 않게 천천히 커피를 내린다. 정성 들인 커피 맛은 최고다. 하루 일을 시작하기 전 차 마시는 시간은 필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있지만, 가끔은 사소한 오해도 존재하는 곳, 커피 한 잔은 위로가 되고 화해의 장, 토론의 장이 열리기도 한다. 그윽한 향기는 단단하게 얽혔던 매듭도 헐거워지고 대화 속에서 풀리기도 한다.

조용한 성품의 그분은 언제나 힘든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깨를 다독여준다. 이곳에서 제일 맡 언니이며 72세의 현역이다. 수목원 산책길을 오르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살펴보면 땀을 흘리며 잡풀을 제거하고 있는 그분을 만날 수 있다.

자연은 쉼 없이 변화하며 쉼터를 마련하고 우리를 기다린다. 계곡의 물소리, 바람에 실려 온 숲 향기는 덤이다. 언덕으로 오르는 길목에 계수나무 잎에서 사탕처럼 달콤한 향기가 진동한다. 여러 색의 단풍처럼 각자의 색이 선명한 이곳 식구들은 오늘도 타인의 안전을 위해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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