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순 수필가

 
 

오래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오래된 영화도 보았다. 요즘처럼 시간이 많은 날에는 소설과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를 보고 비교를 하는 것도 무료함을 달래는 방법 중에 하나일 수도 있다. 작품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이다. 소설은 공지영이 썼고, 영화는 故오병철 감독이 만들었다.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 졌을 때 소설을 읽었던 독자들은 나름으로 요구하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예를 들어 소설에서 느끼지 못한 생생함이라든가 영상미가 보여주는 아름다움, 손수건을 적셔줄 만큼의 감동일 것이다. 물론 그것은 배우의 몫이기도 하겠지만 감독이 얼마나 소설을 이해하고 풀어내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우선 배우의 선택은 획기적이었다. 강수연, 심혜진, 이미연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톱 배우였다. 심혜진은 이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 여자연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는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감독은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여성의 희생이 가부장제라는 거대한 보이지 않는 틀이라는 부당함을 알리고, 제목처럼 여성들이 정체성을 찾아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그것은 영화의 결미 부분에서 영선이 자살을 한 후, 혜원과 경혜가 가정과 남편에서가 아닌, 자신들 스스로 정체성을 찾아 나가며 새롭게 출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왠지 소통의 부재가 커 보였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1993년에 소설로 발표되어 1995년에 오병철 감독에 의해 영화한 작품이다. 우선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90년대의 한국 사회상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은 가부장제라는 틀 속에서 무언의 희생을 강요당했다. 결혼 전에는 아버지에게,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순응해야 했다. 작품 속에서도 혜완이 아이를 잃었을 때 오로지 아내인 혜완에게만 질타가 돌아 왔고, 경혜 또한 어렵게 방송국에 들어갔지만 결혼 후 며느리와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 해야만 했다. 영선은 유학을 간 곳에서 남편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학업을 포기 한다.

소설은 작품의 탄탄한 구성, 작가의 어휘 구사능력이 독자를 끌어 들일 수 있는 척도일 것이다. 반면 영화는 배우의 실감나는 연기력, 작품의 구성 등, 감독의 역량이 무엇보다 큰 몫을 한다. 영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각본은 소설을 쓴 공지영이 썼다. 과연 오병철 감독의 선택은 성공을 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소설가는 언어의 마술사가 필요하고, 영화에서는 원작을 잘 다듬고 새로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기술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실제로 영화에서 배우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소설에서와 똑 같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성에서는 인정을 받았지만, 관객들에는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결국,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소설로서는 수많은 독자를 낳은 작품으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영화는 소설 그 이상을 바라는 관객의 욕구는 충족시키지 못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붕위에서 녹아내린 눈이 처마에서 긴 고드름으로 매달려 있다. 눈은 매달리지 못하지만 태양으로 인해 얼음으로 변한 고드름은 할 수 있는 일이다. 작품이 누구의 손에서 빚어지느냐에 따라 빛나기도 그렇지 못하기도 한다는 것을 저리 쉽게 알 수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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