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설희 수필가

 
 

가끔 기억나는 현수막이 있다. 「비타민 나무 팝니다 ○○농장」

이해되지 않았다. 비타민 나무라니. 영양제 캡슐이라도 열리는 나무인 건가. 내 머리로는 돈나무에서 진짜 돈이 열린다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다량의 비타민을 함유한 나무. 극한의 기후와 척박한 토양에서도 매우 잘 자란다. 열매나 잎으로는 식품, 음료, 의약품, 주스, 잼, 식초, 술, 과실유, 화장품, 비누 따위의 다양한 제품을 만든다. 뿌리 퍼짐이 좋아 산림 복구에 알맞다. 고 한다. 그런 나무도 있구나 신기했다.

나는 현수막을 유심히 보는 편이다. 현수막을 볼 때면 전국의 모든 현수막 사진을 찍어 책을 내보면 어떨까 상상한다. 그 지역 풍경보다 때때로 그 지역 어느 곳에 걸린 현수막이 그 지역을 잘 말해준다 생각한다. 이 지역에는 이런 문제가 있구나, 이 지역에는 이런 기쁜 경사가 있구나. 고작 한 줄에 마음이 더 친숙해진다.

나는 지역 현안보다 경사가 적혀 있는 현수막을 더 좋아한다. 어느 집안 자손이 공학박사가 되었다든지 서울대에 나왔다든지, 그럼 종친회부터 작은 모임에서까지 현수막을 걸어둔다. 그 기쁨이 나한테도 전해져 마음이 따뜻해진다. 올해 초에도 음성 여기저기에 붙은 현수막을 보며 모르는 사람이지만 괜히 뿌듯해졌다.

요즘 부쩍 도로에 눈에 뜨이는 게 있었다. 사이클 선수들. 음성에 전지훈련이라도 온 것일까? 생각했는데 음성 종합운동장을 지나가 보니 6월 1일부터 일까지 전국 사이클경기를 한다는 현수막이 보였다. 궁금증에 해갈되면서 생각지 못한 경기가 반가웠다. 코로나 이후 음성에서는 축제와 경기가 사라졌다. 그런데 전국 단위 대회를 한다니 코로나도 이제 저만치 물러간 기분이 들었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는 현수막을 거는 일이 별로 없었다. 특출한 인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경사도 없었다. 하지만 올 4월, 음식물쓰레기 비료 업체 덕분에 우리 마을에는 현수막이 잔뜩 걸렸다. 마을에서 걸어놓은 건 몇 개가 전부다. 전부 음성군 지자체나 협회, 각 면에서 보내준 메시지다. 「결사반대, 지역을 위해 늘 고생이 많으십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쓰레기매립반대 운동에 숙박협회가 함께합니다. 원남주민여러분 힘내십시오!!」 「이건 아니라고봐! 아닌 것은 아닌겨!」 등등 각 곳에서 응원과 반대 목소리를 함께 내주고 있다.

그중 인상 깊은 현수막이 있다. 「분노, 주민은 절규(絶叫)한다. 순천자(順天者)는 흥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한다. 민심이 곧 천심(天心)이거늘 주민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토지주와 공사를 강행하는 악덕업자 음식물 쓰레기(비료라 함)을 매립하는 자는 삼재팔난((三災八難)으로 고통을 받을 것이다」 준엄한 메시지에 보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정말 나쁜 짓을 하면 안 되겠구나 절로 들었다. 현수막 하나하나가 마을을 지키는 장승 같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하다.

그 밖에 자주 보이는 현수막은 코로나 관련과 안전속도 5030 전면 시행 현수막이다. 뉴스로 보는 것보다 현수막으로 보는 것이 안전과 법에 더 와닿는 기분이 든다. 코로나 덕에 긴장을 안고 사는 요즘, 보고 싶은 현수막이 있다. 이 말은 유퀴즈에서 재난 안전문자를 보내는 행정안전부 주무관이 한 말이다. 「코로나 19 감염병 위기 경보가 해제되었습니다. 함께해 주신 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그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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