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순 수필가

 
 

주말이라고 두 딸이 내려왔다. 가끔씩 엄마 아빠를 보러 내려오는 아이들이 고맙고 대견하다. 점심상을 차리던 딸들이 저희들끼리 속닥댄다. 이내 숟가락과 그릇들을 싱크대로 가져가더니 닦기 시작했다. 깨끗한 걸 왜 다시 닦냐고 하니 엄마도 어느새 할머니가 되었다고 한다. 너희들이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할머니냐고 묻자 닦지 않은 숟가락과 그릇들을 내게 보여준다. 나는 분명 깨끗이 닦는다고 했는데도 그릇에는 음식물이 묻어 있었다.

내가 중학생 때였을까. 공장을 다니던 언니와 나는 주말만 되면 온 집안을 뒤집느라 바빴다. 엄마는 살림을 살뜰하게 하지는 못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새벽부터 들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셨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설거지도 지딱지딱 해치우셨다. 밥을 먹으려 보면 숟가락과 그릇에는 언제나 음식물 찌꺼기가 묻어 있었다. 어느 날에는 언니와 내가 부엌 살림살이를 죄다 큰 솥에 넣고 끓인 적인 있었다. 깨끗하게 소독을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그때는 왜 그리 플라스틱 접시가 많았는지 다 삶은 솥을 열어 본 순간 접시들이 쭈글쭈글 해져 있었다. 얼마나 암담하던지. 그날 밭에서 돌아오신 엄마에게 호되게 지청구를 들었다. 없는 살림에 그 많은 접시를 버리게 생겼으니 엄마는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딸들에게 퉁바리를 맞고 나니 그 옛날 나와 엄마의 모습을 소환하고 말았다. 사실 나도 이런저런 일로 바쁘게 살다보니 살림을 살뜰하게 하지는 못한다. 살림에 신경 쓸 시간이면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읽는 것이 더 낫다는 게 내 지론이다. 어쩌면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우리 자식들 먹여 살리느라 바빠 그러셨다지만 나는 떳떳하게 아이들에게 뭐라 할 말이 없다. 그저, ‘그래 엄마도 이제는 늙었잖어.’라고 혼자서 중얼거리고 말았다.

다시 눈을 감아라, 이 말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였던 박지원의 <답창애答蒼崖>에 나오는 글귀다. 어느 날 장님이 아침에 밖을 나와 걷는데 눈을 뜨게 되어 너무 기뻐 집으로 돌아가려하니 골목길의 갈림길도 많고 대문도 같은 집이 많아 집을 찾지 못해 울고 있었다. 그때 그 장님을 본 화담선생이 도로 눈을 감으면 집을 찾을 수 있다고 하자 그제야 장님은 집을 찾아 갔다는 이야기다.

장님이 눈이 떠지자 되레 세상은 혼돈으로 보였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자 오히려 안정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갈 수 있었다. ‘눈을 뜬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결국 욕망의 시작점이며 자신의 분수를 뛰어 넘는 일이 된다. 막상 자신에게 없던 것이 생기면 모든 것이 이루어질 듯하지만 오히려 갖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게 될지도 모른다.

까마득하게 잊었던 엄마와의 일들이 딸들을 통해 오늘 깨달음을 얻는다. 지난한 삶속에서 언제나 힘들어 보이던 엄마를 보며 나는 엄마보다 잘 살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런데 지금 나의 모습이 딸들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그 옛날 내가 그랬듯이 딸들도 엄마의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아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언젠가 딸들이 나에게 했던 말들이 생각난다. 엄마가 너무 힘들어 보인다고 했던 말. 나는 정말 잘 살고 싶어서 열심히 살았던 것인데 딸들의 눈에는 힘들어 보이다니, 결국 내가 보았던 엄마의 모습이 딸들에게도 똑 같은 엄마인 내가 있었다.

그 옛날 엄마도 그랬겠지. 자식들 앞에서 약한 모습 보이지 않으려 힘들고 고되지만 정말 열심히 살아 내셨을 그 모습, 다시 눈을 감아야겠다. 더 이상 어리석은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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