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설희 수필가

 
 

7월 말, 막냇동생이 아기를 낳았다. 아기 이름은 산. 우리 집은 아기가 아기를 낳았다 생각했다. 모든 막냇동생은 나이가 몇 살이든 그 집안에서는 아기다. 적어도 우리 집은 그렇다.

나는 동생의 출산에 별 감흥이 없었다. 동생이 결혼해서 부럽지? 아기 보니깐 결혼하고 싶지? 등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아, 라는 단조로운 반응만 나올 뿐 마음에 미동도 없다. 그래도 동생이 나 둘째 대신 효도하는 거 같아서 미안하고 고맙다.

산이를 낳고 한 달 만에 제부에게 연락이 왔다. 동생이 매우 힘들다 했다. 제부는 직장 특성상 일주일에 이틀 야근하는 날은 밤에 집에 없어 동생 혼자서 온전히 돌봐야 했다. 유난이라 여겼다. 나랑 7살 차이 나는 막냇동생은 어리광이 심했다. 아직도 내 무릎만 보면 앉으려 하고 친정에서 잠을 잘 때면 같은 방에서 자자며 용돈으로 나를 협박한다. (물론 내가 받는 쪽이다) 나는 제부 연락을 받고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동생은 아이를 낳기 전에 백과사전 같은 육아 사전을 샀고 산후조리원에서도 2주 동안 교육을 받았다. 오히려 동생이 아이를 낳아본 적 없는 우리보다 한 수 위다.

나의 육아 이미지는 텔레비전이 전부다. 아기가 밤에 울면 부부가 힘들어한다. 서로 돌보기 싫어서 미룬다. 아기 피부는 프랑크 소시지처럼 매끄러우면서도 건들면 톡 하고 터질 것 같이 단단하지만 연약한 느낌이 있다. 아기는 항상 체온 유지를 위해 무언가 푹 덮는다. 어떻게 보면 고양이 키우는 지식보다 더 모른다.

엄마가 처음 산이를 안을 때 방긋방긋 웃었다. 할머니 보고 웃는다, 하니 아기는 처음 태어날 때 시각과 청각이 약하다고 했다. 그래서 낯가림이 없다. 요즘에는 아기가 손을 타지 않게 많이 안아주지 않는다고 한다. 산모가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손이 간다.

신생아는 2시간에 한 번씩 밥을 줘야 한다. 먹고 자는 게 일이라고 하지만 분유는 뚝딱 나오지 않는다. 밥도 꿀꺽 먹는 게 아니다. 잠도 쉬이자는 게 아니고 트림도 그냥 시키는 게 아니다. 2시간에 한 번씩이라는 말은 신생아 부모에게는 잠은 1시간에 1번이라는 말과 같다.

텔레비전에서 장정 같은 남자에게 운동과 육아 중 뭐가 힘드냐고 묻자 육아라고 말하며 우는 소리를 냈다. 웃자고 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다. 우선 잠을 못 자니 고문이다. 산이는 용도 잘 쓴다. 용쓰네, 용쓰다 라는 말을 은유가 아닌 직유로서의 쓰임을 산이를 통해 알았다. 그래서 농담 삼아 처음 배운 게 발길질이랑 주먹질이네 했다. 무언가 불편하거나 배에 가스차면 온몸으로 용을 쓰며 자신의 상태를 알린다.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에 태어나 소통하려고 하는 게 기특하다.

산이를 처음 보며 놀랬던 건 피부였다. 아기 얼굴에 각질이 피었다. 아기 피부는 예민해서 쉽게 열꽃이 폈다. 신생아의 체온은 성인체온보다 조금 높다. 그래서 항상 실내온도를 24도로 해야 한다. 그래도 열꽃이 생겼다. 엄마는 옛날에는 아이는 무조건 따뜻하게 키워야 한다고 이불을 푹 덮어줬는데, 했는데 요즘은 아니다.

그리고 점점 산이는 머리가 커지면서 두피 각질이 지루 피부염처럼 심해지더니 지금은 잉어 비늘처럼 딱딱하다. 엄마도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으니 크면서 없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볼 때마다 걱정이다.

나와 둘째가 간다고 해도 막냇동생의 일이 주는 건 아니다. 우리는 보조다. 산이 울면 우리가 안고 있을 때(거의 둘째가 돌보지만) 동생은 분유를 탄다. 동생이 밥을 먹일 때면 수유 쿠션을 갖다 준다. 동생이 산이를 씻기면 우리는 욕조를 치운다. 집안일이 있으면 둘째는 산이 트림을 시킨다. 30분을 안아서 등을 토닥토닥한다. 우리의 진짜 역할은 막냇동생이 무슨 일을 겪든 당황하지 않고 안정감을 찾게 해주는 품이다. 그리고 우리가 있어 화장실을 마음대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아이 혼자 돌보는 엄마나 아빠에게는 이것이 가장 큰 도움이 아닐까.

동생이 빨래를 너는 동안 나는 산이 배 마사지를 해준 적이 있다. 배가 내 손바닥보다 작다. 이 안에 심장도 있고 위도 간도 신장도 여러 가지가 꼬물꼬물 다 있다고 생각하니 신기하고 신비롭다.

지금 산이는 70일을 넘겼다. 아직 신생아다. 그런데도 처음 만났던 십 며칠보다 더 커진 느낌이다. 그때보다 더 많이 운다. 표정도 더 풍부해졌고 옹알이 같은 말이 터질 때면 미소가 절로 난다. 아직 100일도 아득하다. 하지만 작년을 생각하면 어제 같다. 앞으로 나의 관찰기는 계속될 것 같다. 그때마다 얼마나 작은 기쁨이 생겨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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