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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안 되는 날남설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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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1.10  14: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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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바인이 논에 빠졌다. 예상했던 일이다. 올해는 큰 태풍이 오지 않았지만 비가 자주 왔다. 땅이 말라야 벼 베기가 수월했는데 모든 논이 다 질었다. 그래서 벼를 벨 때마다 콤바인이 빠졌고 트랙터로 빼기 일쑤였다. 이번 논은 다른 논들에 비해 가장 까다로웠다. 그리고 돈도 많이 들었다.

논은 10마지기 땅으로 다른 논들이 비해 큰 땅이었다. 논이 크면 일이 수월하다. 수확도 많다. 4마지기, 5마지기 논을 베러 다니는 것보다 이동도 편하다. 하지만 이 논은 배수에 문제가 있어 남의 땅임에도 올해, 우리 돈을 들여 수로를 정비했다. 남의 땅에 돈을 들여 농사를 짓는 게 수지에 안 맞기는 하지만 길게 보고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잦은 비로 벼는 대부분 납작하게 쓰러졌다. 다행히 풍수해보험을 들었지만 보상은 40%밖에 받지 못했다. 다시 말해 10마지기 논이다. 올해 우리는 벼농사를 약 100마지기를 했다. 10마지기면 10분의 1이다.

벼를 베기 전, 쓰러진 벼를 세우기로 했다. 벼는 질척한 논바닥에 딱 붙었다. 바닥에 붙은 벼 중에는 퍼런 것도 있었다. 차라리 포기하는 게 낫겠다 싶었지만 역시 아까웠다. 아빠는 우선 안 쓰러진 곳 위주로 살살 갔다. 그동안 나와 엄마, 동생은 아빠가 지나갈 곳에 긴 대나무 막대기를 이용해 벼를 세웠다. 볍씨가 땅에만 닿지 않으면 되지만, 이미 뿌리까지 쓰러진 벼를 세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첫 줄은 무사히 베었고 오른쪽으로 돌며 질척해진 논바닥을 피해 베려고 했는데 결국 모두의 예상대로 빠졌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빠진 논바닥 흙은 모래였다. 수로를 정비하면서 둑도 새로 다듬었는데 옆에 흐르는 냇가의 바닥과 섞이면서 모래가 많아졌다. 바퀴 전체가 빠졌다.

아빠는 트랙터를 가져오셨고 다행히 외삼촌도 오셔서 도와주셨다. 문제는 갯벌 같은 논바닥이었다. 콤바인을 빼러 간 트랙터도 빠졌다. 포크레인을 부르면 되지만 바로 오는 것도 아니고 돈도 아까웠다. 한 시간을 씨름해서 콤바인이 겨우 빠져나왔다. 쓰러진 벼를 최대한 밟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트랙터가 있던 자리는 벼와 진흙이 엉기며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아까웠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다. 하지만 고생은 보답은 받지 못했다. 트랙터에 콤바인을 연결해서 잡아당겨 보았지만, 바퀴는 헛돌면서 더 깊게 빠졌다.

이번에는 논 위의 밭에 올라가 당겨보기로 했다. 다행히 빼냈다. 벼 베러 온 지 3시간이 지났다. 그래서 아기 머리에 이발기를 밀 듯 살살 밀며 탈곡했다. 그리고 또 빠졌다. 정말 일 안 되는 날이다.

결국, 벼 세우기는 포기다. 엄마는 나와 동생에게 집에 가라고 했다. 집에 온 뒤 염소 밥을 주고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고양이를 귀여워해 주니 금세 어둠이 찾아왔다. 점점 겨울이 오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동생은 어제 만들려고 했던 배추술찜을 했다. 어제가 부모님 결혼기념일이었는데 일이 있어 그냥 지나갔다. 깨끗이 씻고 나니 개운해졌다. 배추술찜은 맛있었다. 후식으로 단감을 깎아 먹었다. 하루가 지고 있었다.

잠들기 전 오늘 하루를 떠올렸다. 우리는 안 되는 일에 매달렸다. 잘 될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결과는 예상했다. 하지만 손을 놓을 수 없었다. 그게 더 안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떠올려보면 그 일은 오늘 일부였고 나는 곧장 오늘 먹었던 저녁이나 읽었던 책 내용을 떠올리며 내일 할 일을 생각했다. 생각에 생각을 더하다 보니 오늘 있었던 일은 점점 뒤로 물러났고 꿈이 찾아왔다. 무슨 꿈을 꾸었다. 분명 꿈을 꾸었지만 눈을 뜨니 기억나지 않았다. 어제 일도 희미해졌다. 나른함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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