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설희 수필가

 
 

패널로 지은 공장이 여럿 보인다. 새로 짓고 있는 공장도 있다. 새삼스럽다. 산과 나무, 밭이 아닌 공장이라니. 그렇다면 그 전엔 뭐가 있었을까.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기억을 미화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전에는 좀 더 좋은 게 있었을 거라고. 기억도 나지 않으면서.

두둑에 점적 호스를 깔고 비닐을 씌우는 중이다. 지금 일하는 밭은 언덕바지라 멀리 동네 풍경이 다 보인다. 당숙 할머니네도 작은할머니네 집도 이 언덕에서 훤히 보인다. 나는 언제나 쉬면서 아는 집을 찾았고 괜히 반가웠다.

이 밭에서 농사를 지은 지는 여러 해다. 작년엔 들깨를 심었다. 그전에는 참깨를 콩을 여러 해 심었다. 올해는 고추를 심는다.

아빠가 이곳을 빌려 농사를 지을 때 한 말이 있다. 여기가 1번지다. 그 말에는 뿌듯함이 베여 있었다. 하지만 나는 별 감흥이 없었다. 남의 땅이었다. 그리고 내가 일할 땅이었다. 번지는 그저 숫자였다. 하지만 듣고 나니 왜 이곳이 1번지였을까 잠시 궁금은 했다.

그 답을 알게 된 건 작년 집회 때였다. 작년 우리 동네는 음식물 쓰레기 비료회사와 대척을 두고 있었다. 외지인이 도라지를 심는다며 비료를 뿌렸는데 알고 보니 음식물 쓰레기 비료였다. 그저 비료였으면 상관이 없었지만 덜 건조된 비료였고 냄새도 고약했다. 동네는 발칵 뒤집혔다. 뉴스에서만 보던 일이었다.

가구별로 당번을 매겨 매일 감시했다. 그래서 나와 동생이 바쁜 아빠 대신 나왔다. 상대에게 느슨함을 보여줄 수 없었다. 지켜보는 것으로 우리의 뜻을 전했다. 겉으로 보는 전의(戰意)는 그랬지만 실상은 동네 모임과 비슷했다. 모이면 옛날이야기부터 나왔다. 이장님도 지나가면서 동네 역사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그중 1번지 이야기도 있었다.

오래전, 일본은 조선에 동양 척식 주식회사를 세우기전 토지 전수 조사를 했다. 대부분 일본이 측량하는 대로 측량했다. 하지만 우리 마을은 아니었다. 마을 몇몇은 측량을 배웠다. 그리고 대나무로 얇게 만든 줄자를 둘둘 말아 일본 감독이 아닌 자신들이 직접 했다. 그렇게 첫 번째로 측량한 곳이 1번지다. 피를 흘리는 것만이 싸움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이 마을을 쪼갠 이야기나 마을 지명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 해주시는 집안 이야기만 듣다가 동네 역사 이야기도 들으니 신선했다.

그때의 측량을 인정해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문제는 그때의 지적과 지금의 지적이 다르다는 것이다. 서로가 약속을 정하고 그은 땅이었지만 나라에서 그은 땅과 달랐다. 아마 대부분 다른 마을도 마찬가지다. 심심치 않게 방송에서도 종종 이런 문제가 나온다. 지금 1번지도, 다른 땅도 마찬가지다. 길도 그렇다. 그래도 우리는 그것을 인정해주었다. 나라의 지적과 다르더라도 서로 양보하고 선을 존중했다. 그 시절을 공유했던 사람들은 그랬다.

하지만 마을은 점점 변하고 있다. 어린 시절, 마냥 신기했던 신작로는 도로로 변했고 버스도 다니기 시작한 지 오래다. 산업단지가 들어서기도 했다. 마을의 선은 점점 나라에서 정한 선과 맞닿고 있다. 아마 내가 마을의 역사를 기억하는 끝 세대일 것이다.

아빠가 관리기 시동을 켰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삽을 들었다. 한눈에 보이는 마을을 보며 왜 이곳을 1번지로 삼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이곳을 측량하고 다음 측량할 곳을 정했을 것이다. 멀리서 다가오는 아빠를 바라보며 나도 다음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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