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설희 수필가

 
 

요즘 동생과 내가 모델로 삶고 있는 MBTI 유형이 있다. 그것은 J다. J는 판단(Judging)을 뜻하며 분명한 목적과 방향 선호하고 계획적이고 체계적이며 기한을 엄수한다. 또 깔끔하게 정리정돈을 잘하며 뚜렷한 자기 의사와 기준으로 신속하게 결론을 내린다고 한다. 동생과 나는 카페에 가면 늘 계획을 짠다. 계획 세우기를 좋아한다. 작은 목표든 큰 목표든 이리저리 인터넷을 찾아가면서 촘촘히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결국 P로 되어 버린다. P는 인식(Perceiving)을 뜻하며 유동적인 목적과 방향 선호하고 자율적이고 융통성이 있으며 재량에 따라 일정을 변경할 수 있다. 상황에 따라 적응하며 결정을 보류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카페에 나가는 순간 계획은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리고 다시 계획을 짠다.

여행 계획표도 그렇다. 전날 경비며 숙소 맛집 시간대별로 몇 날 며칠 고생하며 작성하지만 정작 여행 다음 날 숙소에서 나갈 때면(첫날은 잘 지키는 편이다.) 계획대로 8시가 아니라 10시 11시인 경우가 태반이다. 계획표는 그저 우리의 만족이다. 이런 우리에게 나름의 웃음 코드가 생겼다. "J는 시간표 보여주는 시간도 시간표에 있대!"

나는 아직 나의 MBTI 유형을 정확히 모른다. 20대에는 스파크 형이었다. 찾아보니 재기발랄한 활동가 ENFP라고 한다. 찾아보고도 말이 돼? 하고 놀랐다. 내가? 활동가라고? 타고난 집순이인 내가? 스스로 진정시키며 일반적 특징을 읽어보니 절반은 맞고 절반은 다르다. 30대 초반에는 잔 다르크 형이었다. 열정적인 중재자라고 한다. 읽어보니 이것도 절반은 맞다. 최근에 다시 해보니 호기심 많은 예술가, 성인군자 형 ISFP가 나왔다. 글을 쓰니까 예술가형이 나와서 기분이 좋긴 좋지만, 다음에는 다른 것이 나올까 봐 차마 다시 테스트하지 못하겠다. 무엇보다 문항 체크도 귀찮다. 그런데 통합적으로 보면 스파크 형이든 잔 다르크든 성인군자 형이든 교묘하게 겹쳐지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호기심이 많고, 어떠한 일의 결과보다 '가능성'을 보는 경향이 있으며, 아이디어를 수행하기 위한 촉매 역할을 한다.>

잔 다르크, INFP를 설명하는 글 중에 하나다. 하지만 얼핏 읽으면 ENFP 같기도 하고 ISFP 같기도 하다. 기억나는 심리실험이 있다. 실험자 5명에게 개인 운세를 풀이한 종이를 주었다. 실험자들은 읽어보니 모두 잘 맞는다고 하였다. 하지만 5명에게 준 운세는 모두 같은 내용이었다.

스몰토크에서 MBTI는 좋은 주제다. 혈액형 4가지보다 훨씬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일본 학자가 만든 이야기보다 훨씬 전문성을 띤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 뿌리에 들어가면 MBTI는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은 모녀(캐서린 브릭스와 딸 이사벨 마이어스)가 만들었다. 이 지표는 제2차 세계 대전 발발로 인해 개발되었는데 이유는 징병제로 인해 발생한 인력 부족으로 남성 노동자가 지배적이던 산업계에 여성이 진출하게 되면서 자신의 성격 유형을 구별하여 각자 적합한 직무를 찾도록 할 목적으로 만들었다. 한국에서도 진로를 목적으로 학생들이 많이 검사하면서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취업 진로 상담할 때도 MBTI를 한다.

어쩐지 나라에서도 이 지표를 활용하니까 전문성이 더 느껴지지만, 실체는 정말 과학적인 걸까. 과학을 떠나서 문항의 개수와 점수로 개인을 정의할 수 있을까. 개인은 무수한 사건과 선택, 시간이 쌓여 자신을 만든다. 포괄적인 데이터로는 개인을 재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에는 그저 웃으면 된다. 하지만 점점 웃자고 하는 이야기에 진심인 경우가 많다. 애초에 MBTI는 단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없는데 어떤 유형에 따라 거절당하는 일도 있다. 그런데 그 유형이라는 것 자체가 가면은 쓰면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큰 조직 일수도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5월 계획은 기억나지 않지만 6월이 되었고 나는 또 계획을 세운다. 이번에는 계획표를 보여주는 시간까지 계획에 넣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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