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순 수필가

 
 

하늘이 끄무레하다. 비가 올 듯도 하면서 소식은 없고 날만 후터분하다. 이런 날은 불쾌지수가 덩달아 올라간다. 계절도 이제 제법 여름의 문 앞에 도달했다는 느낌이다. 앞으로는 이런 날도 심심찮게 만나게 될 터이다. 그동안 수없이 여름을 맞았으면서도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습기가 많고 더운 날은 말도 귀찮아 질 때가 많다. 다른 날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길 말인데도 이상하게도 더운 날은 송곳이 되어 박히는 경우도 생긴다.

우리 속담에 ‘물은 깊을수록 소리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잘난 사람일수록 잘 난 체 하거나 떠벌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이가 들면서 나도 모르게 만나는 사람을 줄이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 중에는 만나면 쉬이 피곤해져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앞선 때가 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느라 상대방의 표정이 어떤지도 살피지 않는다. 물론 오랜만에 만났으니 밀린 이야기도 많을 터이다. 그 사람은 장날 좌판에 펼쳐 놓은 만물상처럼 이것저것 많은 이야기를 순서도 없이 벌려 놓는다.

언어는 생각의 집이라고 했다. 우리의 생각은 집이 되어 각자 가슴속에 한 채씩 만들어 진다. 그런데 그 집을 이루는 재료가 무엇이냐에 따라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집이 될 수도 있고 모래 위의 성이 되기도 한다. 부단한 노력으로 생각의 집이 탄탄하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다. 하지만 그 좋은 집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값어치도 매겨진다. 아무리 좋은 재료들로 만든 집이라 해도 제때 쓰이지 않거나, 반대로 너무 생각의 집을 남발 한다면 그 또한 값어치는 달라진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해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또 너무 과묵하거나 자신을 지나치게 낮추는 말과 행동은 음흉하다는 오해를 부른다는 얘기다.

요즘 길을 가다 보면 중·고등학생들의 대화를 나도 모르게 엿듣게 된다. 모든 대화 속에 비속어가 섞여 듣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그 학생들의 모습을 힐끔힐끔하게 된다. 어릴수록 말은 부드럽다고 했다. 유치원생들의 참새 같은 조잘거림은 우리들의 마음을 얼마나 환하게 밝혀주던가. 그렇게 예쁜 아이들의 말이 거칠어지는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다. 모든 아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아이들은 집단으로 어울리며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거나 일명 ‘센’ 축에 들고 싶은 욕망에 그런 행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말이 고우면 행동도 바르다. 반대로 말이 거칠면 행동 또한 과격해 진다. 그러고 보면 말과 행동은 한 몸이다. 결국 말이 우리의 몸인 집이 되는 것이다. 그 집을 빛나게 하는 것은 자신의 말에 달린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몸에 관심이 많다. 어떤 사람은 근육이 있는 멋진 몸으로, 또 어떤 사람은 아름답거나 건강한 몸이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처럼 몸이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 것을 경험을 한다. 수 많은 유혹을 물리치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만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 그러고 보면 생각이 우리 몸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생각의 집이 단단한 사람일수록 일과 삶에서 느끼는 만족감은 커진다고 했다. 또한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는 사람처럼 멋있는 사람은 없다.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말을 할 수 있는 방법, 그것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몸을 만들 듯 집을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으로 말이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