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설희 수필가

 
 

요즘 내가 우리 가족에게 밀고 있는 유행어가 있다. 식량 위기 시대라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세계 이상기후로 인해 곡물 생산이 어려워 식량 위기 시대가 올 것이라는 뉴스를 보았다. 마치 지구 종말 몇 초 전 같은 충격이었다. 우선 나와 우리 가족이 실천한 할 수 있는 것은 냉장고 파먹기다. 잊고 있던 냉동식품 해결하기. 있는 반찬 다시 보기. 우리 집은 상을 차릴 때 기본 반찬 5가지 이상 놓고 먹기에(손에 가지 않아도) 항상 반찬이 남았다. 손이 큰 것도 아니지만 손에 가지 않아도 반찬이 별로 없으면 부실한 느낌이 든다.

그러다 보니 반찬은 항상 남는 편이었다. 하지만 식량 위기 시대를 생각하니 버리는 반찬이 아까웠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남은 반찬은 반찬통에 모아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 것이었다. 엄마가 반찬을 버리려고 하면 엄마 그거 설순이 거야! 하고 반찬통에 담는다. 그리고 항상 하는 말. 식량 위기 시대라고!

하지만 정말 식량 위기 시대가 맞는 걸까? 인터넷으로 미국 유명 프랜차이즈에서 도넛을 폐기하는 영상을 보았다. 러시아 침공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밀 수출이 어려워 밀가룻값이 많이 올랐다고 하는데 팔지 않은 도넛을 쉽게 쓰레기통에 버린다. 같은 날 아프리카 기아 문제가 뉴스로 나왔다.

한국에서도 당장 밀가룻값이 올라 외식 가격이 많이 올랐지만 올랐을 뿐이다. 가격이 머뭇거리지 않는 액수여서일까? 올 초 자장면값과 짬뽕값이 천원 올랐다. 우리 집은 나와 동생이 면허를 따면서 점심은 자주 포장해서 먹는다. 다들 면을 좋아하니까 짜장면 아니면 짬뽕이다. 밭일을 하니까 점심때면 기력이 없다. 평소에도 국수나 라면을 자주 먹는데 12시까지 일을 하게 되면 편의상 포장이다. 무엇보다 설거지가 거의 없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식량 위기 시대라고 뉴스에서만 나오고 방송마다 음식이 빠지지 않고 나온다. 사장님 나오는 방송에도 먹방, 매니저가 나오는 방송에도 먹방, 혼자 사는 연예인 방송에도 먹방. 사람이 주인공인지 음식이 주인공인지 헷갈린다. 하지만 나부터 어떤 연예인이 나오는가보다 무슨 음식이 나오는지에 따라 채널을 돌린다. 그리고 먹고 싶다고 생각하고 먹을까? 결심을 굳혀간다. 그 사이 우리 집 냉장고에는 설순이 반찬통들이 하나둘씩 쌓여갔다.

며칠 전 뉴스에는 쌀 재고가 역대 최고라고 했다. 정부에서도 <논 타작물 재배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논을 밭으로 재배하는 것이 쉬운 게 아니다. 우리 집도 논이었던 곳에 콩이나 고추를 심은 적이 있는데 밭에 돌이 많아서 고역이었다. 거름도 많이 줘야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원이 없거나 축소된 지자체가 많다.

벼농사는 농민이 마지막까지 놓지 못하는 작물이다. 특히 나이 든 농민들은 자신이 지은 쌀을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는 게 행복이다. 내가 겪지 않은 끔찍하고 어려운 일들을 보낸 세대여서 무엇보다 자식들 입에 자신이 지은 쌀이 들어가는 것을 기쁨으로 여긴다. 자식들도 다른 농사는 힘들다고 하지 말라고 하지만 벼농사는 자신들이 휴일 때면 내려와 부모님을 돕는다. 다른 농사와 달리 손도 덜 간다. 이분들에게 쌀값이 떨어지니 다른 작물을 지으라고 해도 안 짓는 게 당연하다. 오히려 돈이 더 들어도 울며 겨자 먹기로 농사를 지으실 것이다.

벼농사뿐만 아니라 다른 작물도 마찬가지다. 인건비와 농약값 비룟값은 오르는데 작물 가격은 그대로 거나 매년 하락한다. 정말 식량 위기 시대인 걸까.

식량 안보 이야기까지 나오지만 낯선 나라 이야기 같다. 여전히 비싸지만, 돈이면 해결할 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다. 하지만 이것이 농업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산업인력도 마찬가지다. 방편의 끝은 어디인 걸까.

지금을 해결할 수 없으면 미래는 없다. 오늘 저녁은 설순이 반찬통을 꺼내서 비빔밥을 먹어야겠다. 누군가에게 조언하는 것보다 스스로 실천하는 것이 가장 빠른 식량 위기 대처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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