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각 부산외국어대학교 전 총장대행

 
 

일본 사가현 가시마시(鹿島市)라는 인구 2만5천 정도의 농어촌 도시가 있다. 내가 이곳을 처음 방문한 것은 30년 전인 1988년 4월이었다. 이곳을 방문하게 된 것은 해안의 갯벌에서 개최되는 가다림픽(갯벌올림픽)이라는 이벤트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의 느낌은 도시의 평온함이었다. 전반적으로 자연훼손이 안된 상태에서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다.

내가 이곳과 인연이 된 것은 1990년부터 2010년까지 무소속으로 5선(일본은 연임에 제한이 없음)을 한 구와하라(桑原允彦) 시장과의 인연 때문이다. 1988년 2월에 처음 만나 지금까지 형제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으니 30년 이상의 관계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시장의 지원으로 1992년부터 지금까지 30년이 넘도록 우리 대학의 학생들이 매년 가다림픽 이벤트를 참가하면서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그런데 이 가다림픽은 갯벌위에서 하는 단순한 축제적인 이벤트만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의미의 캣치플레이 하에서 진행된다는 것이다. 즉, 갯벌은 어민의 생존을 위한 삶의 터전이기 때문에 갯벌의 자연을 보존하는 것이 인간도 공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와하라 시장은 모든 시의 정책이 자연과 인간의 공존에 맞추어 20년간의 시정을 이끌어 왔다.

무엇보다 내가 처음 방문했던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도심이 거의 변화된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1990년대만 해도 가시마시 도심 도랑의 하수수질이 3등급이었는데 이젠 1등급으로 수질을 바꾸어 갯벌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가시마시는 자랑하고 있다. 개발보다는 자연보존에 더 가치를 둔 시장의 철학과 시민의식이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구와하라 시장이 5선 째 도전할 때, 일화는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당시 집권여당인 자민당 후보는 신칸센을 가시마시로 유치하는 공약을 걸었고(정부에선 가시마시를 거쳐 인근의 높은 산을 관통하는 계획이었음), 구와하라 시장은 이에 반대하는 공약을 걸었는데, 시민은 구와하라 시장을 선택하여 결국 이 노선은 가시마시에서 30분 내외의 다른 곳으로 결정되었다. 구와하라 시장은 신칸센은 30분 정도 차를 타고 가서 이용하면 되는데, 이 신칸센이 우리 도시를 지나 가시마의 높은 산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연이 파괴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 줄 유산은 자연을 파괴한 개발된 도시가 아니라 자연환경을 물려주는 것이 가장 큰 유산이라고 주장하여 시민의 지지를 얻은 것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이게 가능할까? 기억하기로는 2000년 초 평택-제천고속도로 톨게이트가 금왕 쪽으로 난다고 음성읍민이 반대집회를 했던 생각이 난다. 우리의 시민의식은 고속도로든 철도든 우리 동네 가까이 지나면 부동산 값이 올라갈 거라는 개인이기주의 때문은 아닌지.

이젠 시대가 지나고 세상도 많이 바뀌고 있다. 이렇게 세상이 변화하는 만큼 시민의식도 성숙되어야 할 것이다.

음성군은 수도권과 가까워서 다른 어떤 지자체보다도 발전 여건이 좋다. 하지만 발전과 개발은 차이가 있다고 본다. 발전은 개발로 인한 일시적 경제적 효과만이 아니라 교육과 문화적 질을 높여 주민들이 살기 좋은 여건을 만들고 시민의 공동체의식이 성숙할 때 가능하다. 그러나 개발은 자연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다. 최근 음성읍에 개발하고 있는 농공단지를 보면서 읍내에서 바라볼 때 높은 곳에 공장이 들어선 모습을 그려 보니 이것이 우리 후손에게 물려 줄 유산인가 하는 씁쓸한 마음이 든다. 또한 육령리를 가보니 골프장을 개발한다고 산 능선이 잘리고 파헤쳐진 모습을 보니 이것이 정말 군민을 위한 것인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 골프장을 통해 세수가 얼마나 들어올지 모르지만 우리보다 앞선 일본을 보면 우리나라도 얼마 안가서 골프장이 쇠퇴하는 시기가 곧 닥칠 텐데 그땐 누가 책임질 건가. 이젠 음성 땅을 그만 파헤쳤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모든 것을 누리겠다는 이기적인 부동산 블로커들 농간에 더 이상 음성군 땅이 훼손되지 않았으면 한다.

이젠 음성군의 개발 다시 점검하고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적어도 음성군의 명산이라 할 수 있는 가엽산, 부용산, 수레의산 등 지켜야할 자연보존 영역과 개발지역을 구분하여 음성군의 땅이 신중하게 관리되었으면 한다. 일본 가시마시 구와하라 시장의 말처럼 우리 후손에게 물려 줄 가장 위대한 유산은 자연이라는 것을 군수와 공직자부터 의회의원들까지 모두 명심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군민들도 보다 성숙된 시민의식의 눈으로 음성군 땅을 지켜보았으면 한다. 우리 후손들에게 살기 좋은 땅으로 남기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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