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순 수필가

 
 

바닥은 뾰족하다. 속이 텅 빈 껍데기 위로 집이 한 채, 두 채, 세 채… 서른 채는 족히 되는 집들이 마을을 이뤘다. 그리고 맨 꼭대기에는 교회가 마을 위에서 상징처럼 섰다. 거대한 소라 위에 그려진 집들이 아슬아슬하다. 얼마 전 다녀온 불가리아에서 사 온 그림 속의 풍경이다.

소피아 대학에서 학회를 마치고 저녁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시내 관광을 했다. 시내는 수도임에도 한산하고 깔끔했다. 하늘은 더없이 파랗게 맑아 하얀 구름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그렇게 멋진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성 알렉산더 네프스키 대성당을 마주하니 웅장한 건 물론이고 거룩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시내 관광은 성 알렉산더 네프스키 대성당이 마지막이었다. 저녁 식사 장소까지 데려다줄 버스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던 중이었다. 모두들 불가리아 대사관저에 있을 저녁 만찬 이야기로 얼굴이 딸막거림이 역력했다. 그때였다. 반대편 공원에서 시장이 열린 것이 보였다. 나는 이때다 싶어 마음 맞는 일행 몇 명과 그곳을 둘러보기 위해 뛰었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기에 각자 자신이 관심이 있는 곳으로 흩어져 구경했다. 그곳은 우리의 도깨비시장 같은 풍물 시장이었다. 오래된 카메라를 팔기도 하고, 유럽의 느낌이 진하게 느껴지는 뜨게 테이블 같은 수예품을 파는 곳도 보였다. 귀엽고 작은 액세서리 골동품을 파는 곳에서 눈을 못 떼는 지인과 함께 구경할 때였다. 순간 내 눈을 뙤록거리게 만드는 광경을 마주했다. 우리와 지근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늙은 노인을 발견한 것이다. 마음에 드는 액세서리를 찾았는지 흥정을 시작한 지인을 뒤로하고 내 발걸음은 그곳으로 내닫고 있었다.

머리와 수염은 언제 깎았는지도 모르게 덥수룩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그림을 그리는 얼굴에는 주름도 자글자글했다. 그림이 마음과 달리 잘 되지 않는 모양이다. 내가 뒤에서 지켜 섰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방해하고 싶지 않아 진열되어 있는 그림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하나 같이 괴기한 그림이다. 나무가 서로 엉키어 다리를 만들기도 하고, 두 나무가 엉키어 만들어진 아치형의 다리는 거대한 절벽으로 두려움이 느껴졌다. 또 사람들의 몸이 늘어져 머리가 하늘을 향해 구불구불 올라가는 형상은 마치 손가락을 만들어 놓는 듯했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돛단배의 돛에는 해골을 비롯한 알 수 없는 그림들로 가득했다. 그림들은 마치 화가 자신만 알 수 있는 모스부호처럼 비밀스러웠다. 화가에게 묻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불가리아 말을 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혼자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가 발견한 그림, 아니 내 마음으로 ‘슥’ 차고 들어온 그림이 있었다. 소라 위에 지은 집이었다. 가는 펜 하나로 그린 그림은 위태로우면서도 묘하게 편안해 보였다. 거대한 소라 속안은 동굴 같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다른 세계와의 소통 통로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소라 위의 마을을 둘러싼 가장자리는 낭떠러지 절벽이다. 집과 집 사이는 나무 같기도 하고 돌 같기도 한 것이 우거져 있다. 그리고 맨 위에 제일 높고도 큰 교회가 있다. 마을을 감시하는 것일까. 아니면 마을을 지켜주는 등대처럼 안식처가 되어 주는 곳일까.

화가의 세계관이 궁금했다. 상상화임에도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너무도 강렬했다. 거대한 소라는 우리 세계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그 위에 집을 짓고 사는 우리들은 언제나 낭떠러지에서 불안한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안식처가 되어 준다는 종교도 어쩌면 우리 인간을 감시하고 옥죄는 덫은 아닐까.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여전히 찾고자 한다면 거대한 빈소라 속 같은 다른 세계와의 소통 통로가 있다는 것이다. 불안한 세상 그럼에도 희망을 주고 싶은 화가의 마음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내가 그림 앞에 한참을 서 있던 것을 알았는지 늙은 화가는 내게 사라는 손짓을 했다. 흰머리가 듬성한 머리를 산발한 채 인상을 쓰고 그림을 그릴 때는 험상궂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나를 보고 환하게 웃어 보이는 노인은 순후무비 그 자체였다. 만약 내게 시간이 넉넉했다면 그 화가와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저만치서 일행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다. 흥정도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그림을 들고 뛰면서도 나는 자꾸만 그 노인이 있던 늙고 우거진 나무 아래를 힐끔댔다. 지금도 그 늙은 화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생각하느라 주름이 더 늘어 가고 있겠지?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