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준 식 전 음성교육지원청 행정과장

 
 

나이가 들어가면서 순간순간 잊어버리는 것이 많다. 들에 일을 하러 가면서 연장을 놓고 가서 그냥 오기도 하고, 시장에 채소 씨를 사러가서 구경만 하고 오는 경우도 있다. 핸드폰을 들고 찾거나 안경을 쓰고 찾아 헤매기도 한다. 산에 가면서 먹을 물을 담아놓고 그냥 가서 고생을 한 일도 여러 번이다.

어느 때는 약속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려 실례를 한 적도 있다. 이러다가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잊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요즘은 메모를 하고 준비물을 챙겨두지만 메모를 잊어버려서 낭패를 본 일도 있다. 점점 나이를 먹는 탓이다 하고 넘어가기에는 심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인간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다. 일부 학자들이 기억에 한계가 없다는 학설을 내놓기도 하지만 통설은 인간의 기억에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을까. 인간의 기억은 교육과 망각을 거듭하면서 계속되는 경험과 의식을 통하여 장기기억장치에 저장됨으로써 비로소 기억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간 사용하지 않는 기억들은 기억력 감퇴와 경로인지 장애, 퇴행성 건망증 등으로 우리 기억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특히, 스트레스나 음주, 노화 등 주관적 인지장애로 기억은 점차로 소멸된다. 불안, 질환, 약물, 우울증이나, 치매 또는 알츠하이머에 의하여 기억력이 급격히 감퇴하거나 지워지기도 한다.

산업이 발전하고 편리하게 되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잊고 산다. 요즘 현대인들은 배곯음을 기억하지 못한다. 장기간 풍요를 겪으면서 우리아버지가 배고픔을 참아가면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른다.

사고 싶은 것을 모두 사도 마음은 더 가난해지고 양말한 짝에 느꼈던 기쁨은 잊어버렸다.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줄고 잔잔한 가족애는 잊어졌다. 버스대신 자가용을 타고 다니지만 시간은 더 없어졌다.

많이 배우고 지식은 높아졌지만 예의는 무너지고 질서는 사라졌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언제부터인가 계산으로 변했다. 여가시간은 늘어났지만 마음의 여유는 사라지고, 양심은 버리고, 행복이 뭔지 모른다. 인간의 삶이 원래 그런 것이려니 하고 넘어가기에 우리는 많은 것을 잊어버리고 산다.

중천(重泉)이라 하여 사람이 죽은 뒤에 혼이 가서 사는 세상이라고도 하고, 죽은 자 영혼이 저승에 들기 전 환생을 기다리며 49일간 머무는 공간이라고도 한다. 이곳에 가지고 갈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단하나 이승에서의 잊어서는 안 되는 ‘딱 하나의 기억’만을 가지고 갈수 있다고 한다. 당신은 어떤 기억을 가지고 갈 것인가? 평생을 같이한 부부의 애틋한 사랑, 부모에 대한 못다 한 효도, 자식에 대한 끝없는 사랑, 평생 잊지 못할 한 맺힌 사연. 수많은 이야기,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했고, 의미 있는 좋은 일을 했던 기억, 이중 꼭 가지고 갈 단 하나의 기억을 취하고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이 순간 나는 당신과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들이 있다. 또 잊어버려야 하는 것들도 있다. 억울하고 나를 힘들게 했던 일, 지난날의 실수, 실패의 쓴잔, 원한이나 미움 이 모두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들이다.

또 기쁘고 즐거웠던 일은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그러나 지난날의 아픈 기억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그날이 있어 평온한 오늘이 있음을 하나의 추억으로 웃으면서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나를 스치는 모든 사람, 모든 일들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점점 흐려져 가는 나의 저장장치 속에 아름답게 많이 담아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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