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설희 수필가

 
 

그동안 미루었던 스티커 정리를 하는 중이다. 내 취미는 다이어리 꾸미기다. 일명 다꾸. 다꾸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이 세계에도 다양한 주제가 있다는 걸 몰랐다. 나는 그때그때 기분마다 다른 다꾸를 하는데 최근에 빠진 건 소녀 그림의 캐릭터 스티커 다꾸다. 예쁜 스티커를 보면 기분이 좋다. 그래서 사고 본다. 마치 책을 사는 것과 같다. 사야 낫는 병이다. 문제는 사고 나서 다이어리 상자에 넣으면 정리를 잊는다. 그래서 마음먹고 생활용품 가게에서 여러 상자와 바인더를 샀다. 하는 김에 제대로 정리를 하고 싶었다.

정리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시간이 걸렸다. 나는 여러 가지 주제로 다꾸를 한다. 빈티지, 감성, 하이틴 키치, 일러스트 등등…. 그러면 그와 무드에 맞는 스티커와 배경지, 마스킹테이프와 글자 스티커와 숫자 스티커, 견출지, 라벨지, 인덱스 기타 등등 종류도 다양하다.

다이어리를 꾸미다 보면 쓰레기도 함부로 버릴 수 없다. 구겨진 영수증, 전단지, 포장지도 좋은 재료다. 그래서 다꾸를 모르는 사람이 내 다이어리 상자를 보면 쓰레기통인지 다이어리 꾸미기 재료 상자인지 알 수가 없다. 약봉지도 중요한 아이템이다.

그런 것들을 정리하다 보니 쉽게 추억에 빠진다. 당시 내가 무엇을 꽂혔는지 기억을 더듬다 보니 진도는 나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새삼 느낀다. 나는 정말 많은 스티커를 가지고 있구나. 이상하게도 그것은 어떤 가능성처럼 느껴졌고 앞으로 어떤 주제로 다이어리를 꾸며야 할지 눈앞에 그려지면서 마음이 설렜다.

글도 쓰지 않으면서 습관처럼 문학 공모전 사이트에 들어간다. 매일 매일 새롭게 올라오는 공모전을 보면 그저 안타깝다. 당선을 확정받은 것도 아닌데 응모하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책감이 든다. 답답하고 괴롭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나 문장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글을 썼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어두운 생각이 밀려들자 멈췄던 손을 움직였다. 이미 스티커들을 다 꺼 놓은 상태라 오늘 안으로 정리하지 않으면 방은 엉망진창이 된다. 바인더 속지에 주제별로 스티커를 꽂아 넣는다. 비닐 속지에 넣어야 어떤 스티커인지 알 수 있다. 요즘 다이어리 꾸미기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 스티커 전용 바인더도 종류별로 나올 정도다.

언제부터인가 마음을 덮고 살았다. 내 마음을 확인하는 것보다 재미있는 것을 찾았다. 편한 것만 찾았다. 마음은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이므로 그 자리에 두면 그 자리에 있는 줄 알았다. 글쓰기도 그랬다.

스티커 정리처럼 내 마음도 조금씩 정리를 해봐야겠다. 아직은 감이 오지 않지만 눈에 보이게 천천히 노트에 적다 보면 조금씩 문장들이 떠오르지 않을까. 잊고 있던 스티커에 어떤 가능성을 느끼듯. 이미 지나간 공모전은 공모전이다. 내가 잡는다고 잡을 수 없는 게 아니다. 스스로 이렇게 마음을 정리해 본다. 그리고 앞으로 쓸 글들을 떠올리며 바인더에 스티커를 하나하나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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