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각 부산외국어대학교 전 총장대행

 
 

음성군의 품바축제가 어느덧 24회를 맞이하고 있다. 21세기의 문을 여는 2000년 첫 개최를 하였으니 벌써 24년의 세월이 흘러 이젠 문화관광부에서 인정받는 명품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렇게 명품축제로 명명되고 음성군민뿐만 아니라 전국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면 그 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본 필자는 부산에서 대학교수를 하면서 당시 정상헌 군수 아들로 자주 음성에 올라오곤 하였다. 정 군수는 늘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안하여 음성군 발전을 할 수 없을까를 고민하시면서 자녀들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없는지 물으시곤 하였다. 무엇보다 지방의 농산물 축제도 중요하지만 음성군만의 새로운 문화축제를 만들고 싶어 하셨다.

나는 지방자치를 앞서서 실시한 일본의 예를 들어 좋은 것은 배울 필요가 있다고 조언을 드리곤 하였다. 그러던 중 아마 1998년 2월쯤으로 기억하고 있다. 우연히 중학교 동기가 운영하는 대광인쇄소를 방문하게 되었다. 대광인쇄소를 운영하는 동기 반영호 대표는 시인이자 음성군 문화예술진흥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인쇄소에 마침 당시 음성신문 이석문 기자가 들려 세 명이 커피 한잔을 하며 이런 저런 음성의 문화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일본 사가현(佐賀縣) 가시마시(鹿島市) 가다림픽에 대한 이야기를 하여 주었다.

가시마시는 평범한 어촌으로 일본 사람들에게 그렇게 관심이 있는 지역은 아니었다. 그런데 당시 지역사회를 지키기 위해 청년들로 구성된 가시마 포럼에서 가시마의 바닷가(有明海) 갯벌을 활용한 축제를 만들어 보자고 하여 탄생된 것이 오늘의 가다림픽(갯벌올림픽)이다. 1980년대 초에는 누구도 몸이 빠지는 갯벌을 활용하여 지역 특색에 맞는 이벤트를 개최할 생각을 못하였는데 가시마를 사랑하는 청년들의 아이디어와 시의 지원으로 1984년 제1회 대회를 개최하게 된 것이다.

 

가다스키 경기 장면

필자는 1988년 처음 가다림픽을 참가하여 당시는 상상도 못하던 갯벌에서 벌어지는 각종 프로그램을 보면서 문화적 충격을 받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이 가다림픽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시가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가시마포럼과 시민들에 의해서 개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행사의 준비부터 행사의 마무리까지 가시마포럼과 각 시민단체들이 역할을 분담하여 책임을 다하는 시민공동체의 행사였다. 행사의 준비부터 진행은 물론 행사가 종료되면 시민들이(각 시민단체) 자발적으로 행사장을 정리하는데 2시간 정도면 언제 여기서 행사가 있었는지 모를 만큼 말끔히 정리를 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게 되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들도 가다림픽 경기장 주변에서 담배꽁초를 줍는 등 봉사하는 모습 속에 시민 전체가 함께하는 행사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정리가 되고 나면 체육관에서 각 가정(가시마포럼회원)에서 준비해 온 음식을 놓고 그룹별로 둘러앉아서 함께 음식을 나누고 서로 그날 행사에 대해 격려하는 뒤풀이 시간을 갖는데 그 모습 또한 감동이었다. 시민들이 주축이 되어 함께 하는 이 가다림픽은 금년 40회를 맞이하고 있으며 이제 세계적인 이벤트가 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품축제로 발전되었다.

필자는 우리 학생들에게도 이런 경험을 통해 학습의 기회를 갖게 하고 싶어서 당시 가시마 구와하라(桑原允彦)시장(1990년~2010년까지 20년간 무소속으로 5선 연임하였음, 가다림픽을 처음 제안한 가시마포럼 초대회장)에게 참여를 요청하였다. 당시는 일본을 가기가 어려운 시기였는데 가시마시장의 지원으로 1992년부터 참가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30년이 넘도록 교류를 하고 있다. 학생들 또한 수십년이 지나도 가다림픽의 경험은 언제나 추억으로 소환될 만큼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일본에서의 경험이었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그날 반영호 시인과 이석문 기자와 나누면서 음성에도 새로운 축제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하였다. 이러한 대화를 하다가 전국적으로 알려진 꽃동네의 최귀동 할아버지를 모티브로 한 품바축제를 제안하게 된 것이다. 비록 거지였지만 최귀동 할아버지의 나눔과 사랑의 정신을 축제의 가치로 삼고 해학적인 품바와 연결한다면 충분히 문화축제로 거듭날 수 있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렇게 3명이 모여 나눈 대화가 품바축제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 날 있었던 대화를 정상헌군수님께 말씀드리니 반영호시인(당시 음성군 예총사무총장)보고 준비를 해 보라고 하여 2000년 제1회 품바축제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품바축제를 한다고 하니까 일부에서는 거지축제를 왜 하냐는 비판의 소리도 많았다. 하지만 품바의 해학과 더불어 사랑이 담긴 나눔의 의미를 잘 부여한다면 분명 이 축제는 명품축제로 발전할 수 있다고 나는 믿었다. 해가 지날수록 품바축제는 전국적 관심의 축제가 되면서 충북 최우수 축제로 선정되는가 하면 문화관광부 인정 명품축제로 거듭나고 있다. 그동안 이렇게 명품 품바축제로 발전시킨 음성문화예술단체와 특히 품바축제위원회에서 수고한 분들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이제 품바축제가 현재를 넘어 더 낳은 미래를 위해 처음 아이디어를 냈던 사람으로서 몇 가지 조언을 하고 싶다.

첫째, 품바축제의 사랑과 나눔의 정신이 음성군내의 정신적 가치로 승화시켜 갔으면 한다. 음성군내의 모든 초중고 교육현장에서 사랑과 나눔의 교육과 실천이 이루어지는 교육모델을 만들어 전국적으로 사랑과 나눔의 가치를 교육하는 교육명품 군으로 자리매김했으면 한다. 그래서 품바축제 때 사랑과 나눔의 상을 시상도 하는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도 함께하여 그 정신을 기리는 품바축제가 되었으면 한다.

둘째, 품바축제의 세계화이다. 세계의 모든 문화권에는 빈민이거나 생활이 어려운 거지문화가 존재하여 우리나라의 품바 같은 공연문화가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의 빈민가에 발생한 ‘텐차오의 노래’라는 거지타령(경극)이 있다. 유럽의 거지인 집시공연도 국가마다 악기연주나 댄싱 등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을 초청하여 함께 하는 품바축제가 된다면 품바의 세계화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오늘날 세계는 문화컨텐츠 시대이다. 우리의 품바 문화컨텐츠를 어떻게 하면 세계화를 시킬 수 있는지 다양한 연구도 필요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우리의 품바에는 해학적인 표현으로 즐거움도 주지만 그 내면에 있는 사랑과 나눔의 정신은 전 문화권에 필요한 정신이기에 세계화로 갈 수 있는 문화 컨텐츠로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품바축제에 유학생들을 적극 초청하여 글로벌 축제로 만드는 것이다. 이미 많은 외국인들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더하여 충북권 또는 경기권 대학 등에 적극 홍보를 하여 외국유학생을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의 자발적 협조를 통해 무료민박으로 학생들을 초청하고 그들과 교류를 한다면 국제화된 음성군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이 제24회 품바축제를 앞두고 품바축제의 탄생을 회고하여 보고 앞으로 더 낳은 품바축제로 거듭나기를 기원하면서 멀리 부산에서 고향을 사랑하는 한 사람이 소견의 글을 남겨본다.

이번 제24회 품바축제는 무엇보다 경제적 어려움에 있거나 힘든 군민과 약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희망의 축제가 되길 소망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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