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순 수필가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는 아이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조금 전 학교에서 누가 더 멋진 다이빙을 할 것인가 겨루자고 했던 터였다. 남자 녀석들 틈에서 의지가 불타오르는 듯 비장한 표정의 여자 아이도 한 명 끼어 있었다. 드디어 동네 입구에서 만나는 큰 다리 앞에 다다르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남자 녀석들은 윗옷을 훌훌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옷을 입은 채로 뛰어내릴 여자 아이는 다리 밑을 뚫어져라 볼 뿐 말이 없었다. 제일 먼저 다리 난간에 올라선 아이는 큰 키에 다부진 몸을 자랑하는 힘 꽤나 쓰는 Y였다. “풍덩”, 뒤이어 다른 녀석이 뛰어 내렸다. “풍덩, 푸우”, 체구가 작아서 인지 떨어지는 모습도 가벼워 보였다. 그 뒤로 몇 녀석들이 바투 뛰어내리고 이제 여자아이 차례였다. 남자 녀석들은 비웃음이 섞인 모습을 해서는 개울가에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여자 아이도 힘껏 물속으로 뛰어내렸다. “풍덩, 촤아”, 성공이었다. 남자 아이들은 멋쩍은지 방금 전 비웃음은 어디로 가고 인정을 한다는 듯 박수를 쳐 주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오는 그날이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여자아이들 보다는 남자 아이들과 노는 걸 좋아 했던 듯하다. 아마도 내 위로 오빠가 둘이나 있어 그랬을 것이다. 그 시절 우리는 여름이면 수영을 하며 하루해를 다 보내곤 했다. 지금은 동네 개울이 물이 말라 그 역할을 못하지만 그 당시 개울은 아이들이 수영을 할 만큼 꽤 깊었다. 중리를 들어가는 길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큰 다리는 아이들이 즐겨 찾던 수영 장소였다. 그곳에서 조금 더 들어가다 보면 주주골과 중리로 갈라지는 다리가 나오는데 우리는 그 다리를 작은 다리라고 했다. 하지만 동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다 큰 다리에서 수영을 하거나 송사리, 피라미를 잡는 등 몸이 빨갛게 타도록 놀곤 했다. 작은 다리는 폭이 좁기도 했고, 무엇보다 얕았기 때문이다.

비록 개구리헤엄이지만 나는 남자아이들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헤엄 실력이 뛰어났다. 그건 어려서부터 오빠들을 따라 집과 가까운 방죽에서 헤엄을 배웠던 때문이었다. 우리 집은 주주골과 중리에서 몇 번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남의 집을 빌려 살아야 했기 때문에 기한이 되거나 집주인이 집을 비워 달라하면 옮겨야 했다. 내가 헤엄을 배운 것은 주주골 과수원집에서 살던 때였다.

주주골에는 방죽이 두 군데였는데 새방죽과 헌방죽으로 불렀다. 두 방죽 모두 사과 과수원이었던 우리집과 지척이었다. 헌 방죽은 우리 과수원 동쪽 끝과 가까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헤엄을 치기 보다는 오빠들이 주로 족대나 낚시로 고기를 잡았다. 헌방죽은 작기도 했지만 수풀이 우거져 물뱀이 유난히 많았다. 그곳에서 잡았던 웅어는 뱀 같기도 하고 큰 미꾸라지 같아 오빠들이 잡아오면 무서워서 소리를 지르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에 반해 새방죽은 우리 집에서 서쪽으로 산을 끼고 돌아가면 나오는 곳이었다. 그 방죽은 널찍하니 탁 트여 바다처럼 보였다. 내가 오빠들에게 개구리헤엄을 배운 것은 그곳에서였다. 주주골에 살았던 친구들은 그 방죽에서 헤엄을 치고 노는 것을 즐겨 했는데 어느 해, 가슴 아픈 일이 있었다. 그때는 비슷한 나이 또래끼리 잘 어울려 놀곤 했다. 그날 나는 그곳에 없었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같이 헤엄을 치며 놀던 친구가 조금 전까지 곁에 있었는데 보이지 않아 둘러보니 깊은 곳에 있더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물위로 머리가 보였다 들어갔다 해서 장난을 치느라 부러 그러는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나오지 않자 다른 친구가 마을로 뛰어가 어른들을 모시고 왔고, 몇 시간 뒤 그 애는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최씨 성의 그 애는 지금도 내 가슴속에서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뒤로 우리에게는 새방죽에서 헤엄을 치는 것이 암묵적인 금기였다.

우리 집은 얼마 후 과수원집을 나가게 되면서 중리 마을로 이사를 갔다. 사실 새방죽을 그 후로도 몇 번 가긴 갔다. 오빠들은 여전히 그곳에서 헤엄을 치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물속에 들어가지 못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자 아픔이 된 그곳이 지금도 아삼아삼하기만 하다. 방죽 둑을 따라 무성하게 자라던 억새는 지금도 그곳을 지키고 있겠지? 개구리헤엄을 치고 놀던 그 시절 친구들이 문득문득 그리울 때가 있다. 즐겁기도 했고, 아프기도 했던 중리에서의 그 여름을 친구들은 추억하고 있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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