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설희 수필가

들깨 모판을 든 손이 점점 묵직해 온다. 장화를 신은 발목도 저려온다. 우리 집은 들깨를 심을 때 비닐을 씌우지 않고 두둑 가운데에 들깨를 심는다. 아빠가 막대기로 구멍을 뚫으면 엄마와 나 동생은 구멍 속에다 들깨모를 집어넣고 발로 꾹 누른다. 남들이 보기에는 저렇게 해도 들깨모가 자라나 싶을지 의문스럽겠지만 우리 집은 몇 년째 이런 방법으로 들깨를 심는다. 허리도 많이 굽히지 않아서 앉아서 심을 때 보다 낫다. 하지만 이것도 땅이 고르고 들깨모가 구멍에 잘 들어갈 때 이야기다.

지금 심는 밭은 흙을 받아서 만든 밭이라 돌도 많고 흙도 딱딱하다. 그래서 구멍도 깊게 안 파이고 구멍이 작으면 들깨모도 구멍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 구멍에 잘 들어가지 않으면 허리를 굽히고 구멍 안에 들깨모를 넣어 줘야 한다. 게다가 며칠 전 비가 내려 땅도 질었다. 내가 들깨를 심는 건지 모내기하는 건지 헷갈린다.

그래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농사 중에서 들깨 농사가 제일 쉽다. 비닐도 안 씌우고 농약도 많이 안 준다. 순도 안쳐도 되고 줄도 안 매도 된다. 산 밑에 심어도 안심인 것이 들깨다. 고라니는 들깨를 먹지 않는다. 간혹 먹어보기 위해 모를 몇 개 뽑기도 한다지만 전부 뽑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지금이 가장 편한 농사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힘든 건 힘들다.

며칠 전 방송에서 손쉽게 농사짓는 방법에 대해 나왔다. 대부분 기계와 장비를 이용했다. 기계로 들깨로 심고 기계로 들깨를 벤다. 선별도 기계가 한다. 방송으로 보면 남 일처럼 편해 보였다. 저렇게 농사를 짓는다면 몸도 안 아프고 금방 부자가 되지 않을까. 우리 집도 몇 번 기계의 힘을 빌리려고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다시 원래의 방법으로 돌아갔다.

예를 들면 들깨예취기로 들깨로 베면 들깨가 덜 여물었을 때 베야 한다. 들깨는 참깨보다 덜 떨어지지만 기계로 베면 반동 때문에 잘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베어진 들깨는 사람 손으로 들깨를 모아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나르기도 편하다. 탈곡기도 마찬가지다. 우리 집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들깨를 털어 보았다. 탈곡기도 사용해보고 트랙터 로타리로 털어 본 적도 있다. 하지만 결국 선택한 방법은 도리깨였다. 기계를 이용하면 알이 으깨지는 것도 있지만 도리깨로 이용하면 알이 잘 깨지지 않는다.

분명 농사를 많이 지으면 편리할 기계다. 하지만 사람이 기계에 맞춰야 더 편리하다. 사람이 편하려고 만든 기계인데 기계 논리에 맞춰 사람이 변해야 한다. 아마 농기계뿐만 아니라 기계를 사용하는 모든 업종도 마찬가지다.

한 고랑을 나오고 쉬기로 했다. 우리 가족은 그늘이 없는 곳에서 우리가 심은 들깨모를 바라보았다. 모를 심기 전까지는 푸석한 땅처럼 보였는데 어느새 푸른 들판으로 바뀌었다. 앞으로 들깨는 그늘 없는 이 벌판에서 많은 햇살을 받고 자랄 것이다. 비도 많이 맞고 바람도 맞을 것이다. 그렇게 시련을 받을 때마다 들깨는 뿌리를 더 깊게 뻗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 힘듦이 들깨를 더 건강히 자라게 한다.

쉬고 있던 아빠가 다시 일어섰다. 우리도 아빠를 따라나서며 들깨모판을 들었다. 다시 힘듦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힘든 일은 힘든 일이다. 편리하게 자라는 것은 없다. 그건 들깨뿐만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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