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순 수필가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몽글몽글 피어나는 날은 왠지 그곳을 오르고 싶다. 날이 좋은 날이라면 음성의 먼 곳까지 훤히 볼 수 있는 그곳은 음성에서 가장 높은 산인 가섭산에 자리한 천년 고찰 가섭사다. 가섭산은 해발고도 약 700여 미터에 달하는 산이다. 그 중 가섭사는 600고지에 자리해 음성의 풍광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사찰이 워낙 높은 지대다 보니 어느 날에는 구름이 절보다 밑에 있어 신선이 된 듯 착각이 들기도 한다.

불교 신자임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절을 잘 찾지는 않는다. 마음이 신산할 때나, 초파일에만 찾는 게 고작이다. 그럼에도 마음이 부산스러울 때면 으레 절집으로 발길이 향한다. 고즈넉한 산사를 자박자박 걷다보면 어느새 복작이던 마음도 안정이 된다. 초파일에는 연등을 달기 위해서라도 꼭 두세 군데의 절집을 찾는데 그 중 가섭사는 빠트리지 않는 곳이다. 올 초파일에도 작은 딸 아이와 가섭사를 다녀왔다. 우리 집 아이들은 유독 가섭사를 좋아 한다. 풍광도 그렇지만 아무래도 막내아들 녀석이 유치원 때 누나와 그곳에서 템플 스테이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가섭사 스님께서 아이들에게 법명도 지어 주셨다.

가섭사는 법주사의 말사로 고려 1365년 공민왕 대와 1376년 우왕 대 사이에 나옹(懶翁)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특히 가섭사는 감로정(甘露井)이라는 특별한 우물이 있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듯하다.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이 우물은 차고 감미로워 초파일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즐겨 마셨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마셔도 전혀 줄지 않는 우물이다. 하지만 국가에 변혁이나 난리가 있을 때면 수량이 줄거나 고갈된다고 한다. 일제 치하에서 광복이 되던 한 달 전에도 우물이 고갈되었고, 6·25 직전에도 물의 양이 감소되었으며 옛날에도 그러한 경우가 자주 있었다고 한다. 그 후로는 사람들이 감로정의 물의 양으로 국가의 중대한 변화를 짐작 했다고 한다.

요즘 들어 유독 가섭사가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 이유는 조선시대 명창인 염계달이 바로 이곳에서 득음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가섭사 극락보존의 왼편에 있는 삼성각 근처 절벽에서 염계달 명창이 소리 연습을 하다 득음했다고 한다. 판소리는 지역에 따라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로 나뉘는데 염계달은 중고제의 시조라 할 수 있다. 조선 후기 판소리 8명창 가운데 한사람인 그는 경기도 여주 태생으로 주로 충주에서 생활했다. 어려서부터 소리에 재능을 보였으나 집안이 가난해 소리공부를 못했다. 그러다 18세 되던 해에 부모님의 허락을 얻어, 충청도 음성의 벽절 지금의 가섭사에 들어가 10년을 하루같이 공부한 후에 명창으로 대성했다고 한다. 근래 들어 충청지역의 신문과 방송에서 음성 가섭사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올라온다. 그것은 중고제의 시조 염계달을 재조명하기 위해서 인데, 지난해 6월에는 가섭사에서 염계달조명 학술세미나가 열렸고, 올해 6월에는 가섭사에서 ‘2023 음성 국제 판소리 축제가 개최되었다.

사라져가는 전통 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음성의 가섭사가 큰 몫을 하는 것 같아 여간 자랑스럽지가 않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며칠째 이어지던 장마가 잠시 소강상태다. 그래서 일까. 해는 가마발갛게 물을 들였다. 언젠가 음성을 다녀간 어느 여행자의 인터넷 후기 글에서 가섭사가 일몰 맛 집이라는 말이 새삼 가슴을 두드린다. 이참에 조만간 가섭사에 올라 구름이 몽실한 풍경도 보고 빨갛게 음성을 물들이는 노을도 천천히 가슴에 담아 오리라 다짐해 본다. 그때는 종소리를 들으며 느린 하루도 맛보리라.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