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순 수필가

어느새 길은 후미부근이다. 이리도 심심할 수가 없다. 울퉁불퉁 했어도 예전에는 이 길이 참 정다웠다. 그럼에도 여전히 낚시꾼들에게는 믿음을 주는 곳인가 보다. 심심찮게 낚시꾼들이 눈에 띄었다. 이곳도 어느새 편리함과 깨끗함으로 바뀌었다. 그나마 구불구불한 길에서 위안을 삼아야 할까. 음성은 유난히도 저수지가 많기로 유명하다. 마을마다 저수지를 한 두 개씩은 품고 있는 곳이 음성이다. 그래서인지 홍수도 가뭄도 비껴간다.

오늘은 육령리 저수지를 찾아 왔다. 음성읍을 벗어나 금왕으로 들어서는 경계에 있는 저수지다. 육령리 저수지는 삼형제 저수지 중 한 곳이다. 삼형제 저수지는 무극(사정)저수지, 금석(육령)저수지, 용계(백야)저수지를 일컫는다. 삼형제 저수지는 1980년에 준공되었다. 산을 뚫어 물이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게 만든 도수터널인 까닭에 세 저수지는 수면의 높이가 언제나 일정하다고 한다. 오랜만에 와서인가. 낯설다. 길가에 우후죽순으로 자라던 나무들도 베어지고 벚나무가 가로수가 되어 사람들은 반긴다. 길은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저수지가 시원하게 한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모습은 이런 게 아니었다.

20년도 더 된 이야기다. 20세기의 마지막 해였던 19996월의 어느 날 나는 음성 예총의 강의실에서 수필 공부를 시작했다. 20명 남짓의 수강생들은 정말 가족처럼 지냈다. 지금은 음성 예총이 번듯한 문화예술회관 건물에 있지만 그때는 음성 군청 초입에 있는 건물 2층에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밥도 해 먹었다. 한솥밥의 정은 얼마나 진한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수강생들은 삼사십 대의 주부와 가장들이 대부분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어떤 날은 식당에 가서 밥도 사 먹곤 했는데 그때마다 우리가 가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육령리 저수지였다. 저수지 길을 따라 가다보면 중간쯤 되는 곳에 은사시나무가 군락을 이룬 곳에 다다른다. 우리는 그곳에서 각자 자신의 나무를 지정했다. 그래서 육령리 저수지는 우리들의 나무가 사는 곳이 되었다.

가끔 우리들의 나무가 있는 곳을 혼자서도 찾아오곤 했다. 가녀린 여인 같은 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게 뻗은 하얀 나무기둥에 작은 바람에도 하르르 떠는 잎사귀를 보노라면 절로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그럴 때면 어느 결에 나무를 꼭 껴안고 있는 나를 본다. 그렇게 함께 또는 혼자서 찾던 곳이었는데 몇 년 전부터 은사시나무들이 뭉텅뭉텅 잘려나갔다. 급기야 이제는 은사시 나무 군락은 사라지고 말았다.

흙길은 비가 오기라도 하면 걷는 것도, 차로 다니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걷다보면 양옆으로 피어 난 야생화를 보는 재미는 쑬쑬했다. 하지만 이제는 흙길은 시멘트 길로 바뀌고, 길섶도 정리가 되어 지저분한 나무들과 야생화들은 찾아보기도 쉽지가 않다. 그나마 오다보니 산 쪽으로 산초나무는 제법 눈에 띄었다. 언제였던가. 남편과 육령리 저수길 길을 산책할 때 산초 잎을 삼겹살에 함께 넣어서 먹으면 맛있다 하여 땄던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저수지가 끝나갈 무렵 저 만치서 은사시나무 두어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잃어버렸던 자식을 만나면 이렇게 반가울까. 나도 모르게 은사시나무를 껴안고 말았다. 용케도 살아남았구나.

이렇게 육령저수지 길을 깔끔하게 바꾼 데는 음성군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음성군은 삼형제 저수지 둘레길 조성사업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와 더불어 군민의 휴식과 더 나아가 힐링 공간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육령리 저수지는 낚시꾼들에게는 인기가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고르지 못한 흙길은 드라이브코스로는 그리 좋지는 않았다. 이제는 길도 시멘트로 깔끔하게 조성되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을 듯하다. 이상하게도 삼형제 저수지마다에는 예쁜 카페와 식당들이 있다. 육령리 저수지 상류에도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카페가 있다. 밤이면 더욱 아름다울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저수지 길을 돌다보면 없던 정도 새록새록 돋아 오르지 않을까 싶다. 조만간 마음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과 다시 찾아오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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