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설희

긴 연휴 동안 이불 밖을 나가지 않았다. 이불 밖을 나가지 않으면 그저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안 한다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불 속 세계는 현실 세계만큼 매우 바쁘게 돌아간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동영상도 시청한다. 가끔 라디오도 듣는다. 당연히 잠도 잔다. 이불을 뒤척이며 앞으로의 미래도 생각한다. 과거의 수치도 떠올리며 인생을 이렇게 낭비해도 되는 걸까, 비참해져 갈 때 동생이 세차장에 간다고 하기에 따라나섰다. 지금의 장소를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벗어날 기회가 없으면 좀처럼 나가지 않는다.

동생이 세차하는 동안 근처 천변을 걸었다. 천변은 지난 수해의 흔적이 조금씩 보였지만 풀들이 그 흔적을 메어주고 있었다. 듬성듬성 자란 코스모스, 누군가 여름 한 철 키웠다 수확된 고춧대와 호박 넝쿨, 넓게 퍼진 클로버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동안 이것은 뿌리를 내리고 잎을 피우고 여름 뙤약볕을 맞으며 자라고 수확이 되었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그리고 가을이 왔다. 그런 생각을 하니 더 울적해지면서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졌다.

그럴 때마다 인터넷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들로 나를 위로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결과는 결과일 뿐이다. 삶은 결과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등등. 며칠 전 본 영화에서도 비슷한 대사가 있었다. 목적은 살아가는 것의 일부일 뿐이다. 이론은 언제나 늘 그럴듯한 말만 한다. 그래도 그런 이야기를 떠올리며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생각은 점점 내게 스며들었다.

내친김에 그동안 본 영화와 영상들을 떠올렸다. 걸음이 빨라질수록 기억나지 않는다. 영상은 기억에 남는데,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아마 2배속으로 시청해서 그런지 모른다.

동영상을 볼 때면 주로 2배속으로 본다. 이제는 정속으로 들으면 답답하다. 천천히 말하는 것 같고 시간을 잡아먹는 기분도 든다. 하지만 웃기게도 바빠서 2배속을 드는 것도 아니다. 무엇이 바쁘다고 2배속으로 동영상을 보았던 걸까. 심지어 동영상도 길게 느껴져 숏폼(short-form) 위주의 영상만 본다. 숏폼이란 몇 초나~1분 이내의 짧은 영상으로 제작한 콘텐츠를 말한다. 그렇게 아낀 시간은 어디로 갔을까. 한때는 그런 방법이 효율적이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걷다가 힘이 들어 돌계단에 철퍼덕 앉았다. 우산을 들고 가는 할아버지가 내 앞을 지나갔고 멀리 맞은편에는 가족이 나들이를 나온 듯했다. 어쩌면 집이 근처인지도 모른다. 천변 위 다리에 지나가는 자동차들도 바라보았다. 그러한 장면들을 바라보고 바라보다가 일어나서 다시 걸었다.

걷는 동안 바람이 불어서일까, 한걸음 발을 옮길 때마다 잊고 있던 시간의 감각이 느껴졌다. 그것이 불편해 시간을 외면했다. 하지만 시간을 잊는다 해서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시간은 나와 상관없이 흘렀고 외면할수록 괴리감만 생길 뿐이었다. 지금 보이는 것을 천천히 눈으로 새기며 걸었다. 배속의 세계가 아닌 누구나 같은 시간이 흐르는 천변에서 말라버린 풀들을 보았고 지나가는 배달 오토바이와 나무 위의 까치를 바라보았다. 그것들을 바라보니 그동안 멈추었던 나의 시간이 조금씩 움직이는 것 같았고 이불 속에서 느끼지 못한 편안함을 느끼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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