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순 수필가

한동안 바둑에 심취한 때가 있었다. 핸드폰에 바둑채널을 깔아놓고 아침저녁으로 동영상을 보며 배우기도하고, 대국 게임도 하면서 자신감을 얻어 보려 했지만 승을 하는 것은 가뭄에 콩 나듯했고, 번번이 패를 당하기 일쑤였다. 사실 그렇게 바둑을 열심히 공부했던 이유는 무거운 책임감 때문이었다. 자의반 타의반 우연찮게 들어간 바둑모임의 회원들은 모두 남자들뿐이었다.

모임의 회원들은 실력이 뛰어나 도 대회나 전국 대회에 참가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여성 선수가 없던 차에 어설프지만 바둑의 기본을 안다 생각하셨는지 바둑협회회장님의 적극적인 권유로 들어가게 되었다. 충북도민 체전이 임박해서 들어갔기 때문에 창피는 안 당해야겠다는 생각에 인터넷으로 나름 열심히 공부도하고 대결도 해 보았다. 문구점에서 바둑판과 바둑돌도 구입해 바둑판에 돌을 채워 놓거나, 인터넷을 보며 사활에 대한 연습도 꾸준히 했다.

사실 내가 바둑을 알게 된 건 어린 시절 큰오빠 덕이었다. 고등학생이었던 큰오빠는 친구와 또는 혼자서 바둑을 두었다. 진지한 그 모습이 너무도 멋있어 다리가 저리도록 도두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그런 내 모습이 기특했는지 오빠는 바둑돌 잡는 것부터 시작해 상대방의 돌을 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초적인 것들을 알려 주었다.

그 후로 물론 오빠와는 대결 상대는 되지 않았지만 바둑을 종종 두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막상 바둑돌을 잡으니 후회가 막급했다. 참가 점수라도 높이자는 취지로 나를 선택했겠지만 대회 날이 다가올수록 밀려드는 후회와 미안함에 나는 속이 타들어 갔다.

하지만, 막상 대회 날이 되니 오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잘하면 얼마나 잘하겠어. 나 같은 초보도 많겠지.’,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 듯 겁먹지 말자 외치며 대회장을 들어갔다. 대진표를 보는 순간, 앞이 캄캄했다. 왕초보인 나의 상대는 그동안 우승을 놓치지 않았다는 사람이었다. 상대는 분명 내가 첫 돌을 놓는 순간 모든 것을 간파할 것이다. 과연 마주 앉고 보니 고수의 품격이 느껴지는 여유로움에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벌써 모든 수를 다 읽었다는 표정이었다.

 

 

몇 번의 바둑돌이 바둑판에 번갈아 가며 놓이고 나는 압박감에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배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바둑판에 패를 의미하는 돌을 던지고 머리를 숙였다. 그날 나의 상대는 우승을 거머쥐었다. 바둑은 대화를 손으로 나눌 수 있다하여 '수담(手談)'이라고도 한다. 바둑의 고수는 상대가 놓는 바둑돌 몇 개만 보아도 무엇을 하려는지 들을 수 있다. 내가 아무리 실력을 감추려 해도 말이다. 비록 그날 일치감치 패를 인정하며 머리를 숙였지만 많은 것을 알게 된 날이었다.

묘수’, 바둑에서 그 말은 생각해 내기 힘든 좋은 수나 형제를 극적으로 반전시킬 수 있는 절묘한 수를 의미한다. 하지만 그날 내가 수없이 궁리했던 묘수란 가당치도 않았다. 제대로 겨뤄보지도 못하는 실력과, 상대의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지경이었으니 어찌 묘수를 바랄 수 있었을까. 밀리는 상황을 극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도 어느 정도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오기를 용기라 여기며 단지 객기를 부린 것 뿐 이었다. 그럼에도 객기였을 그날이 부끄럽지 않은 것은 패자로서 당당히 인정하는 것 또한 묘수는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돌아보면 사는 동안, 지는 것이 죽는 것보다 싫었던 때가 정말 많았다. 헌데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말도 수긍이 가는 것을 보면 어느새 나도 묘수를 아는 나이에 접어드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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