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순 수필가

시간만큼 빠른 것이 또 있을까. 엊그제 초등학생이었던 자식이 어느새 장성해 결혼을 하고, 까맣게 빛나던 내 머릿결도 희끗희끗하게 세고 있지 않던가. 거울에 비친 얼굴의 잔살을 보노라면 세월의 무상함이 무뜩무뜩 든다. 영국의 극작가 저지 버나드 쇼의 무덤에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글귀가 써 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소중한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말리라 가슴에 새겼던 마음도 부지불식간에 없어지는 순간이 허다했다. 그러니 매정하고 무서운 것이 시간보다 더한 것은 없지 싶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구나 거북이 걷는 시간을 경험한다. 컵라면에 물을 붓고 기다리는 3분을 초조해 하고, 배가 고파 들어 간 식당에서 주문 한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은 또 얼마나 길었던가. 신호등 앞에서도 그렇다. 만나야 할 사람은 앞에 보이는데 신호등은 빨간불에서 초록불로 넘어가는 시간이 마치 1시간은 되는 듯 길게 느껴졌던 때도 있었다. 신호등에 나타난 숫자를 세면서도 이내 발은 벌써 마음을 앞선다.

모든 것은 경험치에서 생겨난다는 말이 있다. 신호등에 남은 시간을 알려주는 것도 사실 어느 아빠의 애틋한 사연 때문이라고 한다. 1998, 아버지와 여섯 살 난 딸은 횡단보도에서 녹색등이 깜박이자 함께 뛰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빨간 불로 바뀌며 달려오던 승용차에 딸이 치어 중상을 입고 말았다. 그 후 전자부품 회사에 근무했던 아빠는 결심을 하게 된다. 보행 시간을 알려주는 숫자가 표지된 신호등을 만들어 다시는 그런 불행을 없애겠다고 말이다. 6년 후 경찰청은 그가 만든 신호등을 도입해 딸이 다니던 초등학교에 제일 먼저 설치를 해 주었다고 한다.

사실 시간이 빨리 가는지 느리게 가는지는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 오로지 한 가지에 집중을 하게 되거나, 그 일에 대한 중요도가 결정을 하게 된다. 지금 나는 탄금호가 내려다보이는 3층의 무인 카페에서 커피를 기다리는 중이다. 넓은 카페에는 손님도 없다. 밖은 비가 내리는 중이다. 아메리카노 버튼을 누르니 화면에 자막이 뜬다.

아메리카노를 배출하는 중입니다. 커피가 맛있어 지는 시간 130. 커피향을 음미하시면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130, 처음에는 짧은 시간이라 생각 되었다. 화면에는 커피를 가는 모습이 나오기 시작했다. 화면만 바라보고 있자니 무료해 자리로 돌아가 비 오는 풍경을 구경했다. 이제는 됐겠지 싶어 자판기로 갔지만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자판기 옆에 있는 컵홀더와 스틱빨대도 미리 손에 쥐고 어서 커피가 나오기를 바랐다. 다소곳이 두 손을 모으고 S에서 F로 가는 과정을 유심히 살폈다. 그런데 진행은 되는 건지 마는 건지 정말 더디기만 했다. 컵홀더와 빨대를 다시 간이 테이블에 놓고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왠지 두 손이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괜히 무인 카페로 왔나. 1층에서 커피를 받아 올 걸 그랬나. 기계가 한다고 저렴한 것도 아닌데. 조급증은 온갖 상념들을 끌어와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아메리카노가 완성되었습니다.’

드디어 커피가 나왔다. 일각이 여삼추라더니 130초가 이리도 길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비가 오는데도 탄금호에는 물닭들의 유영이 한창이다. 자맥질을 하기도 하고 물 위를 뛰어 다니기도 한다. 커피가 식는 줄도 모르고 탄금호의 풍경에 빠져들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어둠이 탄금호로 내려앉는 중이었다. 거듬거리며 짐을 챙겼다. 탄금호는 바람 때문인지 넘실넘실 파도가 일었다. 그럼에도 물닭들은 바람이 밀어주는 물그네를 타며 유유할 뿐이다. 아마도 시간이 빠른지 느린지는 옹종한 우리 사람만이 중요한 모양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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