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깨 모판을 든 손이 점점 묵직해 온다. 장화를 신은 발목도 저려온다. 우리 집은 들깨를 심을 때 비닐을 씌우지 않고 두둑 가운데에 들깨를 심는다. 아빠가 막대기로 구멍을 뚫으면 엄마와 나 동생은 구멍 속에다 들깨모를 집어넣고 발로 꾹 누른다. 남들이 보기에는 저렇게 해도 들깨모가 자라나 싶을지 의문스럽겠지만 우리 집은 몇 년째 이런 방법으로 들깨를 심는다. 허리도 많이 굽히지 않아서 앉아서 심을 때 보다 낫다. 하지만 이것도 땅이 고르고 들깨모가 구멍에 잘 들어갈 때 이야기다.지금 심는 밭은 흙을 받아서 만든 밭이라 돌도 많고 흙
공직에서 퇴직한 선배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다. 교직을 퇴직한 선생님이 시골에서 살고 게셨는데 같이 어울릴 사람들도 마땅하지 않고, 사모님은 돌아가신 터라 혼자 숙식을 해결하고 외롭게 살고 게셨다고 한다. 서울에 사는 자식 내외가 가끔 오기는 하나 직장관계로 늘 바쁘고 하여, 아들의 수차례 걸친 강권으로 서울 아들네 아파트로 거주지를 옮기게 되었다. 아들은 서울에서 대학을 나오고 대기업에 취업을 한 관계로 며느리도 좋은 직장에 다니는 소위 엘리트를 맞이하여 남들이 부러워하는 집안이라고 한다.서울에 와서도 주말에나 자식들과 만날까, 평
미소(微笑)란 소리를 내지 않고 빙긋이 웃는 웃음을 말한다. 선진국의 사람들은 사람과 마주치면 잘 웃기도 하지만 웃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웃지도 않지만 웃는 모습 또한 어설프다. 한국인은 왜 미소에 인색한가?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서양인이 서울의 거리를 걷다보면 젊은이들의 얼굴 표정이 어둡고 웃지를 않아서 겁난다는 말을 많이 했었다. 외국인들이 본 한국인들은 어른들은 물론이고 어린이들까지 잘 웃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외국인들이 한국 어린이들이나 어른들에게 미소를 지으면 사람들은 눈길을 돌리거나 심각
바야흐로 수국의 계절을 맞았다. 몇몇 곳에서는 이미 꽃잔치가 한창이고 강진, 공주, 태안, 거제 등 여러 지역에서도 이달 중순경 수국축제를 시작할 모양이다. 요즘은 자치단체와 지역의 공, 사립 식물원 및 수목원에서 철 따라 대규모 꽃밭을 조성해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삶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기에 꽃과 식물만큼 훌륭한 대상물도 없을 터라 바람직하게 여겨진다.수국은 범의귀과 수국속 집안의 잎지는 넓은잎 작은키나무다. 자생 개체는 없고 일부러 심어 가꾸는 식물로 높이 1m가량 자라며 여러 줄기가 돋아 포기를 이룬다. 마주나는
‘집단사고(groupthink)’라는 말은 의사결정론에서 가장 심각한 실패가 발생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응집성이 강한 집단 내에서 의견일치에 대한 강한 압력으로 그릇된 결정에 이르게 됨으로써 심각한 위기상황에 직면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들이 직면한 문제 그리고 대안이 가져올 기본적인 문제점조차 확인되지 못한 상황에서 어느 한 방향으로 일방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 결과이다. 한마디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체계가 전혀 작동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의사결정 혹은 정책결정에 의한 참혹한 결과를 의미한다.어떤 의미에서 집단사고가 가진 문제는 독재체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는 아이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조금 전 학교에서 누가 더 멋진 다이빙을 할 것인가 겨루자고 했던 터였다. 남자 녀석들 틈에서 의지가 불타오르는 듯 비장한 표정의 여자 아이도 한 명 끼어 있었다. 드디어 동네 입구에서 만나는 큰 다리 앞에 다다르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남자 녀석들은 윗옷을 훌훌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옷을 입은 채로 뛰어내릴 여자 아이는 다리 밑을 뚫어져라 볼 뿐 말이 없었다. 제일 먼저 다리 난간에 올라선 아이는 큰 키에 다부진 몸을 자랑하는 힘 꽤나 쓰는 Y였다. “풍덩”, 뒤이어 다른
때때로 사람들을 보면 모두들 웃음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때가 있다. 어떤 이들은 살다 보니 미소 지을 일이 점점 없어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이 처음 만날 때면 서로를 탐색한다. 첫 만남부터 공격적일 때도 있고 무심하게 지나칠 때도 적지 않다. 이렇다 보니 서로에게 미소 짓는 일은 더욱 줄어든다. 다시 생각해보면 미소가 사라지면서 사람들의 만남은 피상적인 탐색에만 머물렀는지도 모른다. 미소를 잃어버린 사람은 얼굴에 생기가 없고 점점 무표정한 인상으로 변해버린다.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인색한 사람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입양은 비밀이고 숨겨야 하는 가족의 비극 정도로 여기는 편견적 사회 인식이 존재하는 사회이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편견은 사실 조상 때부터 전래된 전통 사상이 아님을 알게 되면 깜짝 놀라게 된다. 오히려 한민족은 대대로 입양을 장려하는 민족이었기 때문이었다. 고조선 이래로 나라의 탄생 설화나 전래 동화에 입양이 자주 등장함은 이 때문이다. 심지어 삼한 시대의 주몽, 박혁거세 등의 탄생 설화에서는 입양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처럼 한민족은 입양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는 가문의 번영뿐 아니라 아동 양육의 권리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이렇게 시작하는 시가 있다. 심순덕 시인의 시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이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라는 구절이 반복되다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고 끝나는 이 시는 우리들의 가슴 한 켠을 시큰하게 하는 아픔을 가지고 있다.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어머니’이다. ‘어머니’라는 세 글자만 봐도 우리는 눈물이 나고 마음이
정신을 차려보니 살이 확 쪄 있었다. 원래 살에 연연해 하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무관심하다. 옷도 항상 편한 옷만 입어서 살이 찌는 것에 신경은 쓰지 않는다. 살이 찌면 더 큰 옷을 입으면 된다. 그렇게 속 편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먹으면 자주 체하기 시작했다. 약도 잘 듣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운동을 해야했다. 소화를 시켜야 했다. 농사일 돕는 나는 운동을 정말 싫어한다. 농사라는 게 밖에서 움직이는 동작이 많으므로 집에서는 최대한 움츠리며 에너지를 보충한다. 땀을 흘린 만큼 살이 빠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농
올해 생일은 애들도 바쁘다고 오지 못하여 그냥 지나갔다. 예년에는 케익도 있고 생일 축하노래도 불려주고 했는데, 올해는 이런저런 이유로 식구와 단둘이 미역국 끓여 먹었다. 애들이 바빠서 그런지 전화도 없고 해서 내심 서운하기도 했다. 요즘 사람들은 생일 그거 크게 챙기고 그러질 않는 거 같다.과거 우리 아버님들은 생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웃에 사는 친지며 친구를 불려 아침을 같이 먹고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미역국에 쌀밥을 차리고 막걸리 한잔은 기본이었다. 초대받은 사람은 소주 한 병 정도 가지고 가서 따라주며 축하했다. 생일
제24회 음성품바축제가 오늘로서 3일째를 맞았다. 많은 사람들이 연일 축제장을 찾고 있다. 누구나 품바축제가 성숙한 축제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는 관광객들을 위해 좀 더 배려하지 못하고 있다.외부에서 축제장을 가기 위해서 대중교통수단인 열차와 버스를 이용한다고 가정하고 음성읍의 관문인 음성역과 음성공용버스터미널의 상황을 알아봤다.음성역에 내려 음성역사 안과 밖을 둘러봤을 때 품바 축제에 관한 정보를 알 수 있도록 비치해 놓은 안내서 하나 없다. 택시를 이용하면 모를까 도보로 가려면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최근 어느 젊은 초선 국회의원의 코인(가상 자사)매매가 화제이다. 가난한 젊은 정치인으로 알려졌던 사람이 코인거래를 통해 수백억 원의 재산을 형성하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더욱이 국회 회기 중 그것도 장관 청문회 과정에도 코인거래를 하였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면 말문이 닫힌다. 정의를 그들의 정치적 생명 혹은 사명으로 포장하던 정치인들과 신부가 저런 파렴치한 국회의원을 옹호하고, 소속당은 출당을 통해 정치적 생명을 연장해주려는 꼼수를 쓰고 있다. 또한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전·현직 고위관료들 자식을 지방직 공무원에서 선관위 공무
꽃봉오리와 꽃대 모습 한 자루 붓 연상시켜뭇 꽃이 피고 지는 사이 올해도 벌써 넉 달이 흘러갔다. 봄꽃들이 펼치는 잔치로 흥성하던 산과 들은 새순과 연초록 잎들로 하루하루 푸름을 더해가고 계절의 밀도는 한층 높아지고 있다.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에도 여기저기서 또 수많은 꽃이 피어나고 있다. 누군가 내게 오월에 꽃이 피는 대표적인 식물을 하나만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붓꽃을 지목하겠다.붓꽃은 주변에서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는 붓꽃과 붓꽃속 여러해살이풀이다. 5~6월 긴 꽃줄기 끝에서 지름 8cm 내외의 보라색 꽃이 피며 소수 개체보다
음성군의 품바축제가 어느덧 24회를 맞이하고 있다. 21세기의 문을 여는 2000년 첫 개최를 하였으니 벌써 24년의 세월이 흘러 이젠 문화관광부에서 인정받는 명품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렇게 명품축제로 명명되고 음성군민뿐만 아니라 전국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면 그 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본 필자는 부산에서 대학교수를 하면서
중학생이었던 그때 학교 가는 길은 그리 수나롭지가 않았다. 1980년대 초, 지금처럼 길도 시원하게 뚫리지도 않아서 학교를 가려면 논과 내를 건너야 했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은 질척질척한 흙길에 신발이나 옷이 엉망이 되기 일쑤다. 그러니 비가 오는 날은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오성동은 음성여중을 가는 길목에 있던 동네였다. 그 동네는 우리 마을 학생
인성교육이나 도덕교육에 있어서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고교육이다. 잡은 고기를 주는 것 보다는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고기가 있으면 하루를 살 수 있을지 모르나 고기 잡는 법을 아는 것은 평생을 살 수 있는 지혜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본격적인 도덕교육이 있기 이전에 그리고 우리가 자율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윤건영 충북교육감이 새 학기부터 ‘充BOOK 운동’ 실천을 위해 힘차게 팔을 걷고 나섰다. ‘充BOOK 운동’은 학생 한 사람이 한 달에 한 권의 인문고전을 읽도록 ‘독서 붐’을 조성하겠다는 운동이다. 보도에 따르면, 충북교육청은 ‘充BOOK 운동’의 실현을 위해 도내 전 학생에게 ‘나만의 인문고전 인생책’ 보급에 1인당 1만 8천 원을 지원하고, 도내 모
봄꽃이 화사하다. 삼월부터 예년에 비해 날씨가 덥더니, 개나리,진달래,벛꽃 등 일찍이 꽃망울을 터트렸다. 공원가나 하천변에 피어난 벛꽃이 바람에 날리어 한잎 두잎 공중으로 흩어져 군무를 이루는 모습은 아름답다 못해 처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네 인생도 꽃처럼 모두가 화사한 봉우리를 피운다. 시인들도 유독 꽃에 대한 주제가 많은 편이다. 그중 하나를 끄집어 내본다. “누구나 한때는 꽃이었다. / 처음으로 돌아가는 길에 / 눈물난다. / 누구나 한때는 꽃이었다. / 시든다고 탓하지 마라. / 떨어진다고 슬퍼마라. / 오늘의 꽃은 어
그동안 미루었던 스티커 정리를 하는 중이다. 내 취미는 다이어리 꾸미기다. 일명 다꾸. 다꾸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이 세계에도 다양한 주제가 있다는 걸 몰랐다. 나는 그때그때 기분마다 다른 다꾸를 하는데 최근에 빠진 건 소녀 그림의 캐릭터 스티커 다꾸다. 예쁜 스티커를 보면 기분이 좋다. 그래서 사고 본다. 마치 책을 사는 것과 같다. 사야 낫는 병이다. 문